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의 특성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은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것이란 여러분이 느끼는 어떤 감정이 아니라 영적인 삶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12절의 말씀은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에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12. 우리는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이어야만 된다는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마치 구원이 행함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처럼 말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믿다” 또는 “믿음을 가지다”는 타동사이며 이 타동사는 주어와 목적어가 있어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타동사 “믿다”의 주어는 인류의 모든 구성원이 됩니다. 반면에 그 동사의 목적어는 구원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좋은 예가 사도행전 1631절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여러분은 현세에서 어느 한 순간 그리스도를 믿어 그 결과로 영원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에 관해서는 끊임없는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굴의 믿음을 요구합니다. 주어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입니다. 그리고 “믿다” 라는 동사의 대상, 목적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자는 꾸준히 말씀을 믿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말씀을 알고 그리고 말씀의 여러 구성 요소를 깨닫기 전까지는 말씀을 꾸준히 믿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특정 시기들의 역사적 맥락에서 말씀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훈의 말씀의 관점과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말씀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이 모든 것들은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히브리서 4:12)


이 구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섯 가지 특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빠릅니다/quick” 혹은 “alive/살아있습니다.” 헬라어 단어 ζν (zon)은 현재 분사로서 “항상 살아있다 혹은 생존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살아있고 혹은 항상 생존해 있고...”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만약 삶이 무엇인지 알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이 참된 삶인지 알기 원한다면, 인생을 최대한 값지게 살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진리에 따라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그러면 여러분의 안내자인 성경 말씀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이것은 현세 삶을 사는데 있어서 비밀일 뿐만 아니라 영생의 삶에서도 비밀입니다.


이 구절의 말씀에서 두 번째로 묘사된 단어는 운동력이 있는/(심신에 미치는 영향이)강한, 영향력이 있는의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살아있고, 심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합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다-심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다- 라는 형용사는 헬라어의 νεργς/ energes라는 단어이며 “활동적이다혹은 언제든지 활동할 수 있게 정비가 되어 강력하다; 영적인 삶을 사는데 효능이 있는 힘이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삶을 사는 비밀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처럼 영적인 동력 혹은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도록 정비된 힘에 대한 비밀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도록 정비된 힘-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며 그 말씀과 약속들과 교훈의 말씀들을 적용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세 번째 특성은 말씀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묘사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검”으로 쓰여진 헬라어 단어는 μχαιρα / machaira입니다. 매우 짧은 검이긴 하지만 고대 시대의 가장 엄청난 발명품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무기의 독특한 양상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사회에 이미 존재했던 다른 검들이 어떠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검 가운데 하나는 ομφαία / romphaia라고 불리는 검입니다. 대개 5-6피트의 길이에 한 면이 예리한 날카로운 칼날과 두 손으로 잡는 큰 손잡이가 달린 넓은 이 칼은 트라키아 사람들이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그 검은 칼집에 넣어 차고 다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걸치거나 때로는 두 사람이 운반하였습니다. 이 야만인들이 이 검을 사용할 때 그들은 검을 뒤로 높이 치켜 들어 그대로 한 날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크게 휘둘러 목표물을 처리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동작은 언제나 검객-검으로 무장한 병사-의 균형을 잃게 하여 역습 당하기 쉽습니다.


로마인들이 처음으로 단지 단검 machaira 만을 가지고 그 야만인을 진격하였을 때 커다란 검 romphaias를 가진 그 야만인들은 진격하는 로마인들을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고는 큰 웃음을 터뜨렸지만 결국에는 로마인들이 승리하여 웃었습니다.


고대 사회의 또 다른 검은 ξίφος / ziphos 인데 단지 끝만 날카로운 특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검의 칼 등의 날은 싸울 때 쓸모가 없었습니다. ziphos를 가지고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오직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은 앞으로 똑바로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적이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구르거나, 아래 위로 움직이거나, 살짝 피하거나, 구르든가, 홱 몸을 숨기든가,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을 때 ziphos 검을 사용하는 검객 역시 역습을 당하기 쉽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발명된 검 κινάκης / akinakes 는 전투용 검이 아니었습니다. 그 검은 뭉뚝한 끝과 칼날을 가지고 있어서 실용적이기 보다는 장식용이었습니다. 그 검의 손잡이는 대개 보석들이 박혀있었고 그것에 의해 그 검의 가치가 정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대기나 지팡이 같은 물체 안에 숨겨지거나 위장되어 있는 검 δλων / dolon이 있었으며 그것 또한 단지 끝만 예리하였습니다.  


이런 검들에 비해서 machaira는 짧았기 때문에 누구나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검을 다루는 자는 덩치가 클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검은 가벼워 다루기가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machaira는 사용자가 균형을 잃거나 역습을 쉽게 당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검객은 그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이 찌르고, 공격을 쳐내고, 왼쪽이나 오른 쪽을 벨 수 있었습니다. machaira라는 검의 비결은 다른 검들에게는 없는 아주 예리한 끝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양날 모두 예리하였습니다. 어떤 검은 하나의 예리한 날을 가지고 있거나 하나의 예리한 끝이 있었지만 machaira라는 검은 그 모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로마 병사들은 machaira라는 검을 가지고 그 야만인들을 쉽게 무찔렀습니다. 그것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인 무기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machaira라는 검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는데 쓰였을까요? romphaia라는 검은 오직 하나의 예리한 날만 있습니다. 성경은 몇몇 곳에만 요점이 있는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구절이 가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검의 끝 쪽에 작은 뾰족한 끝이 있는 검 ziphos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정확한 묘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려하게 장식한 검 akinakes도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성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dolon이란 검 역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성경 속에 숨겨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경 속에 어떤 코-암호-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암호를 걸어두셨기 때문에 그 암호를 풀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잘못된 말입니다. 오늘 이 구절에서 분명하게 밝혀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마지막 책의 이름이 계시록이라 붙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성경을
machaira
라는 검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검의 각 부분에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한 점 한 획도 다 귀중하고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한 점 한 획 모두 다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유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기독교인은 결코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기독교인은 안정적입니다. 이는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상황에 적용되면 곧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 하나인 교훈의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13:8)


이 구절은 하나님의 본질의 한 양상인 하나님의 불변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의 속성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신실하시며; 변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신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 하나님의 속성을 직면하는 문제에 적용시킬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신실하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정신 안정과 평온함에 대한 근본적 원리인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는 견고한 결론으로 이끕니다.


12절 말씀의 네 번째 특성은 성경 / 하나님의 말씀은 “꿰뚫는” 것, 헬라어로 diikneomai / διϊκνομαι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꿰뚫습니다; 깊이 자르는 검입니다. 조만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여러분의 급소를 찌를 것입니다. 달리 말씀 드리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를 강타합니다! 헬라어의 현재형 시제인 “꿰뚫는”은 계속 꿰뚫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꿰뚫는다는 것은 또한 헬라어에서 *중간태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찌르거나 꿰뚫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에 의해 베임을 받고 그로 인해 유익해 지는 것은 오직 이 때뿐입니다.
 *-
중간태란 주어 동사로 구성된 문장에서 동사의 동작행위가 주어가 자신을 위해서 혹은 자신에 의해서 혹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서술함-


다음 구절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비물질적인 부분 혹은 속 사람을 뚫고 들어가서 그곳에 머뭅니다. 성경은 거듭난 사람의 비물질적인 부분은 혼과 인간의 영이라는 두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유일한 책입니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인간의 비물질적인 부분을 뚫고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칼이나 검으로 누군가를 찔러 인간의 물질적인 부분인 몸을 꿰뚫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칼을 건네주면서 “나가서 사람의 혼을 찌르십시오” 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혼을 찌를 수 없습니다. 혼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합니까? 머리를 찌르겠습니까 혹은 목울 찌르겠습니까? 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몸통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곳에-inner being- 존재합니다. 어떠한 검이나 총알 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비물질적인 부분을 꿰뚫기는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만약 여러분이 기관총 총알들로 몸을 벌집으로 만든다고 해도 영혼을 결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구절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방해하거나 속상하게 하는 사람 혹은 여러분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한다면 말씀이 여러분의 태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혼을 꿰뚫고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평안과 고요함을 제공합니다.


다음 구절에 있는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라는 이 구절은 의학적인 비유를 연상시킵니다. 생리학을 알고 있는 외과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칼이나 수술 도구를 가지고 성공적으로 절개할 수 있습니다. 절개하는 것이 성공적인 수술을 하는 데 필요한 것과 같이 성경도 혼과 영을 치료하기 위해서 절개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마지막 특성은 어떻게 그것을 (수술/ 절개) 하는지에 관한 주제로 나아갑니다.


성경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분/ 재판관입니다” 감찰자는 두 사람 사에 일어난 사건을 판결하는 재판관입니다. 그는 비판력 있는 재판관인 비평가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를 비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판결에 감사해야만 합니다. 성경이 우리의 행위에 대한 잘못을 지적함으로 우리가 자백하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관계에 들어가는,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이 어떻게 심판하는지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우리 생각의 재판관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따금씩 추측할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심판하는 재판관입니다.  


성경은 “생각과 뜻”의 재판관 혹은 비평가입니다. “뜻”이란 단어는 ‘동기’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생각과 동기, 혹은 내적인 삶, 또는 마음을 심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를 시샘하고, 질투하고, 교만하고, 우쭐대고, 여러분의 모든 동기가 틀린 것이라면, 성경은 이러한 동기들을 심판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죄악의 생각이나 동기를 인정할 때 수술은 실행되고 죄는 제거되고 (요한일서 1:9) 교제는 회복됩니다.


Bob Thieme  목사님의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책자 한국어 번역본에서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의 특성들가운데 일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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