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실행을 위한 조치


히브리서 4:2-3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출애굽 세대의 신자들과 오늘날 신자들 사이에 서로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 유사점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많은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약속들을 청구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전례를 따라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약속들은 오직 믿음과 결부될 때 유익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원리들을 포함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들을 아는 것과 그것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약속들은 말씀을 공부하고 기억함으로 학습될 수 있습니다만 그 약속들은 오직 믿음으로 취득하게 됩니다. 창고 안에 있는 칠천 부대의 시멘트는 콘크리트가 되기 전 까진 실제로 쓸모가 없습니다. 콘크리트가 되려면 물과 모래가 알맞은 비율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현세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들이 콘크리트가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약속들은 믿음과 결합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청구하는 데 있어서 대체될만한 것은 없습니다.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를 신뢰했다면,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구세주로서 받아들였다면/믿었다면, 나는 너희를 위한 많은 놀라운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니 그것들을 받으려면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노력/생각을 중지하고 말씀/하나님의 생각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가 신자로서 잠시 동안 가만히 있을 수 있으면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노력/생각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평안을 제공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만히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스스로 노력하여 이 안식의 장소를 얻기 위하여 틀림없이 아주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도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행복이라 불리는 포착하기 어려운 이것을 얻으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격려와 만족과 평안 또는 축복을 가져다 줄 무엇을 찾고자 애를 쓰며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움직일수록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것을 점점 더 거절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어라 그래야 내가 너희를 축복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맨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것을 받으려고 가만히 있으면 인간적인 관점에서 노력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생각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 안식이라 불리는 것이 -현세에서 신자들이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롭고 비견할 데 없으며 무한한 공급을 해 주심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안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sabbath와 같은 말이며 이는 순간순간 마다 누리는 안식이라는 말입니다. 이 장소에 들어가는 데는 오직 한가지 방법뿐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을 믿음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에서 “우리”란 구원받은 후에 약속들을 “믿었던” 모든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은 “감정적인 반응이나 감정적인 경험을 부추겼던 우리들, 혹은 (습관을) 합리화하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풀기 위해) 인간적인 생각을 사용하거나 인간적인 노력을 하는 우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라는 이 구절은 오직 한 가지 유일한 가능한 방법 즉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비축해 두신 약속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안식의 계곡의 또 다른 일면은 그곳이 어디에나 위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베라카 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은 휴스턴의 어떤 지역이나 텍사스 어떤 지역이나 세계의 어떤 지역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간순간 거하는 안식을 마련해 주셨지만 우리가 이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믿음의 산등성이를 넘어야만 합니다.


이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들을 믿음으로 청구해야만 한다는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신자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때는 하시라도 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319절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광야에서 하나님 신뢰하기를 거부한 구약 시대의 신자들 집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신자들의 역사를 읽었으며 또 읽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에이집트로부터의 해방- 대한 생생한 그림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통과하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 하는 어린양의 피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 그들이 사막을 지나가도록 길잡이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항로표시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막과 거룩한 절기와 그리고 레위기 제사법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에 대한 완벽한 교과서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대단한 영적 유익을 마련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을 위하여 안식하는 일곱째 날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께만 열중해야만 했습니다/주님께 향한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매 순간마다 누릴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해 주신 것을 기억나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발을 위해 신발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복을, 전시에 필요한 지식, 그리고 적과 문제와 어려움으로부터의 구출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들은 날마다 주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비통함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추와 마늘과 파와 석류들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좋은 것을 모두 그들이 기억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망각했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보급에 대해 망각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고통의 40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자였지만 매 순간마다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참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려 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것, 힘과 능력과 안정감을 통하여 신자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안식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공급-을 통해서 나옵니다. 안식 없이는 우리는 영적인 삶에서 전혀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합니다. 순간 순간마다의 안식 없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마련해 주신 것을 취득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보냈던 한 주일이 어떠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평상시와 같은 한 주였으면 비통함과, 여러 문제들과, 곤란한 일들과 그리고 골칫거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우울하고, 정신적으로 불안 헸고 속상했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을 뒤돌아 볼 때마다 누차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을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으로 일어나지 않게) 멈추고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은혜로우신지요.


이러한 모든 압박감, 어려움들, 가슴 아픈 것과 문제들 속에 있을 때에 신자로서 우리가 염려하는 것에 관해서는 오로지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의 문턱에 서서 어느 하나를 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는 것을 택하든지, 혹은 믿지 않는 것을 택해서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날 까지 완전히 혼란스럽고, 속상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어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에 들어가거나 혹은 몹시 당황하여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지 못함으로) 비참해 질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어떤 사람, 물질적인 것, 사교적 행사, 삶에서의 지위나 혹은 성공의 정도에 의존하는 상대적이며 일시적인 행복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안식의 장소를 통해, 삶에서 어떠한 인간적인 요소에도 의존하지 않는 장소를 통하여 완벽하고 영구적인 행복을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이 장소는 기쁨과 힘의 근원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함으로써 우리는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신자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비밀은 3 절에 있는 작은 단어 안식 (rest)”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대단하신지를 완전히 깨닫는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안식으로 들어가도록 우리 개인의 현실에서 놀라운 어떤 일들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소들에게 꼴을 먹이기 위하여 특별한 장소로 들어가게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 특별한 장소로 들어가도록 노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허락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허용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제력을 잃어 뛰어 다니며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운 상황에서 당황하여 생각 없이 무언가 하도록 허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낙담하고 속상해 하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모든 시련을 겪도록 허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차려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두신 순간 순간의 이 안식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안식 혹은 평안 또는 만족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본문을 여러 번 읽은 후에야 어쩌면 영어 본문에서 보다 원문인 헬라어 본문에서 이것을 이해하는 열쇠가 3 7절의 말씀,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본문의 전체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이 본문을 얼마나 여러 번 들었는데도 어떻게 한 가지를 듣지 못하였을까요? 우리는 안식 ‘rest’ 이라는 이 특별한 단어가 안 들립니다. 그것은 여기에 있지만 우리는 못 듣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믿음으로 그 약속을 청구하십시오 (청구하여 취하십시오), 이 순간 순간의 안식으로 들어가십시오.


허리케인의 중심 혹은 눈에는 고요하고 조용한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곤란한 문제는 바로 우리 모두는 이 중심점 주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리케인 속에서 이리저리로 날려 다니고 뒤집히고 엎치락뒤치락 하며 제어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는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허리케인의 눈 안이 평화롭다.” 곤란한 문제와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 중심부로 들어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눈 속은 고요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가장 은혜로운 것 중에 하나는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난을 주심으로 우리가 깨어나서 그 혼란 속에 고요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그 중심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을 결합시키십시오!


그래서 3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문제나, 어떤 어려움이나, 어떤 역경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마다 너희는 위기를 직면하고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너희는 나의 방법이든 너희의 방법으로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해결책을 사용할 수 있으며, 심리적 승화와 보상이 되는 모든 움직임과 활동들을 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왜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신자인 너희가 나를 의지하고, 나를 신뢰하기를 원한다. 내가 너희에게 준 자원으로 용이하게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실제로 하나님께서 나는 성경에 있는 약속들, 말씀을 너희에게 주었다. 먼저 나는 너희들이 그 약속들을 알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이 그것을 청구하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안정되어서 가장 어려운 것 두 가지 번영과 사람으로부터의 인정-를 포함하여 삶이 여러분에게 가져다 주는 어떤 것이라도 견딜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안정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과 도움이 되기를 원하시며, 그리고 놀랍고 보배로운 영혼들로 하여금 그들의 개인적인 주님이시며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삶의) 해답이신 것에 대해 살아있는 증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식”이라고 불리는 이 한 지점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 전체는 산산조각 납니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노하신다는 것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정책과 결정들을 설명하고 밝히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적인 생각과 속성을 소유하신 것처럼 생각하는 anthropopathism (신인 동감 동정설)에 의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노하심" 의 상태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축복도 내려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축복을 부어 주시도록 하지 않는 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축복도 내려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을 그만 두고 하나님의 생각을 적용함으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시게 해야 합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 있는 3절의 "if"라는 단어가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헬라어 구조는 단호한 부정적인 주장이나 맹세의 설득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글자 뜻 그대로 “내가 분노하여 맹세한 대로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오직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것은 앞 구절에서 발견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세대에게 말씀하셨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말씀하고 게십니다. “너희는 말씀을 믿겠느냐? 너희는 나를 의지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그만 두겠느냐?


기독교인의 삶에서 역설적인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히 행복해 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완전히 비참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전에 종종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목발을 제거하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행복에 대한 나의 해답은 바로 이 분이야” 라고 생각하고 그 분에게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지하는 그 버팀목을 차서 없애버리십니다. 우리는 이것저것을 시도해 봅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한가지이며 그것은 나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너희가 여러 가지 인간적인 버팀목에 의지함에도 불구하고 너희에 대한 나의 사랑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일초 동안 혹은 하루 동안만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상황이 아무리 어렵게 되고 그것이 아무리 길게 지속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주님을 바라십시오/앙망하십시오! 주님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긍정적인 의지를 사용하여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기뻐하시며 우리의 삶은 변화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참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정되고 다음 산등성이를 넘어가도록 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을 소유해야만 한다거나, 인간관계나 사람 혹은 사교적인 일이나 사람의 인정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나와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내 안에서 너희는 충만하게 되었다 (골로새서 2:10)”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원리를 이해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제거할 필요가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먼지 구덩이에서 기어 나올 수 있도록 우리를 매우 비참하게 만들어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길 원하지 않으시지만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으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으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편 37:4-5)


“의지하다”라는 말은 사실 “또한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한다/의지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오, 아버지. 전 지금 지독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이보다 더 비참해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베드로전서 5:7절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의 문제들을 주님께 위탁합니다. 저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제가 치러야 할 전쟁은 주님의 전쟁입니다. 제 문제는 바로 주님의 문제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취하셔서 해결해 주십시오. ! 잠깐만요, 방금 뭔가가 생각났습니다. 주님, 그 문제를 다시 제게 돌려 주십시오. 제가 먼저 제 생각대로 한번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은 어떤 시도를 합니다만 여러분의 시도는 결딴이 납니다. 그래서 다시 비참해져서, 다시 주님께 그 문제를 넘기고는 몇 분간 평안을 소유합니다. 하지만 그러나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말합니다. (인간적인) 해결책에 대한 생각이 났습니다! 그 문제 다시 돌려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대부분의 시간을 걱정하고 당황하면서 문제들을 주님께 돌려드렸다가 다시 찾아오고 하는데 보냅니다.


이것이 정확히 성경에 “기다리다”라는 단어가 있는 이유입니다. 기다림이란 항상 믿음을 의미하지만, 이는 단지 일초 혹은 오분 동안만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계속해서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미 아브라함에 대해 알아본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로마서 4:20)


“믿음에 견고하여져서”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는 끊임없이 신뢰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모든 소망이 죽은 (나이가 많아 늙었음)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8:10-11). 바로 여기에 반복적으로 시험 받은 인류의 일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한 모든 것은 “주님,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줄곧 끊임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손을 허락하신다는 약속을 이행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지금껏 살았던 가장 위대한 신자들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그 뒤를 잇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야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해야 할 일을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일을 끝마쳤을 때  “주님, 제게 메달을 달아주세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은혜에 관하여 가르치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 아니다. 나는 네가 시내 아래로 가서 그 물이 마르는 것을 지켜 보기를 원한다” (열왕기상 17:5-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주님, 이건 불공평합니다.”라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엘리야를 가난한 이방인 과부의 집이 있는 먼 지방으로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 가난한 과부가 그를 돌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력하고 먹을 것도 없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으며 거의 자살하기 직전에 있는 여인을 택하셔서 엘리야를 위대한 신자로 만드는데 그녀를 동원하셨습니다 (열왕기상 9:17-24). 엘리야는 이방 여인을 통해서 주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대단한 궁전으로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스라엘 땅에서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인생의 무력함에 대한 교훈과 그리고 기다리며 신뢰하는 능력을 가르칠 무력한 사람에게로 데려가셨습니다! 2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자 이제 엘리야. 넌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엘리야는 그 땅으로 돌아가서 커다란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다윗도 양 무리를 돌보는 동안에 기다림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린 소년일 때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셨지만 그는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주변의 사람들이 출세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의 지위가 올라가고, 엄청난 지지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움직여라” 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즉시 그의 삶에서 가장 혹독한 시험들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다리고 좀 더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만 했으며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완벽한 평안과 능력과 힘의 영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어려움을 통하여 그를 훈련시키셔야만 하셨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43절의 마지막 구절을 주목하십시오. ...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골로새서 1:16),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기독교인을 행복하게 할 모든 것들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한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폰스 드 리온/ Ponce de Leon이 찾을 수 없었던 진짜 “불로천: 청춘을 되찾게 해준다는 유럽 전설에 나오는 신비의 ”의 계곡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플로리다나 어떤 다른 지리적 장소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의 내면에 그 무엇을 것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외부에도 그 무엇을 마련해 주셨는데 이는 완벽한 평안과 완벽한 행복에 기여하는 데 관련 짓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을 산출하는 혼 안에 있는 말씀의 약속들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세상을 창조할 때” 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때 마련해 두셨다면 이 본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연 몇 퍼센트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의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순간 순간의 안식, 즉 안식과 평안과 기쁨이 있는 곳 이것이 삶 속에서 안정과 역경을 이기는 힘을 낳게 하는 그 순간 순간의 안식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채 삶을 살다가 주님과 함께 있을 본향에 가게 될지 궁금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나, 어려움 그리고 시련에 대한 초기 원인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말씀과 여러분이 당면하는 문제의 체험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문제들이 너무 어렵고, 상황이 절망적일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효과가 있는 오직 한 가지를 애를 써서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계속적이고 끊임없는 신뢰입니다!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앙망하십시오!


Bob Thieme 목사님의 "Faith Rest Life" 책자 한국어 번역본의 한 부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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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9.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감찰하심의 특성, 믿음을 간증하는 특성, 시험과 기도의 특성 [8] Steve 2016.07.04 874
81 8.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의 특성 [9] Steve 2016.06.29 827
80 7.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특성 [1] Steve 2016.06.22 755
79 6.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에 대한 역사 [1] Steve 2016.06.17 906
» 5.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실행을 위한 조치 [1] Steve 2016.06.10 837
77 4.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정의 [5] Steve 2016.06.01 807
76 3.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신약에서의 Meribah의 적용 [2] Steve 2016.05.27 827
75 2.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출 애굽 세대의 두 번째 므리바 [Meribah] 사건 [1] Steve 2016.05.20 1025
74 1.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 기독교인의 삶 Steve 2016.05.07 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