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므리바 [Meribah] 사건


민수기 20


40년간 배회 한 후, 출애굽 세대의 사람들이 하나도 안 남게 될 때까지 소멸된 후,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들의 선조들이 물이 없어 시험 받은 그 장소로 되돌아 왔을 때 그 므리바 사건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요?


1. 첫째 이스라엘 자손 회중이 광야 이르러 …..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2절 앞부분). 4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 자녀들은 많은 압박감과 문제들 그리고 궁핍함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고 신실하게 유대인들의 광야 여정에 모든 병참술적 필요를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들이 신발이 필요했다면, 그들은 필요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들이 물이 필요했다면, 그들은 필요했으며, 하나님께서 물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들이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 과학의 지식이 필요로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들이 음식이 필요했다면, 그들은 필요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교훈의 말씀을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셨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자녀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만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비록 아주 오래 전에 일어났지만 여러분에게 현실적이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물이 없는 상황에 대신하는 것은 지금 여러분의 문제들입니다. 무엇이 없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친구가? 행복이? 남편이? 아내가 없습니까? 그것이 무엇이 됩니까? 각자의 삶 속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부족한 것에 대한 문제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의 시험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것에 관련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없는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그것에 대한 이유가 있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없는 어떤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신뢰하겠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광야의 그 세대들에게 주지 않았던 것을 주었다. 나는 이 시대를 사는 너희들을 위하여 7,000개가 넘는 약속들을 주었으며 그것들은 말씀 속에 기록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만사해결입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후반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주권자로서, 쇠퇴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서, 전능하시며 불변하시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취소 할 능력은 없으십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취소할 수 없으십니다! 그러나 이 7,000 가지의 약속들은 오직 현세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약속들을 (내세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에 관해서는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립보서 3:20-21)

 

……….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또한 하늘의 저택(거할 곳)에 대한 약속과(요한복음 14:2) 본향에 있게 되는 (주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약속(고린도후서 5:8)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사태 즉 ‘물이 없는’ 문제에 여러분이 지금 직면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무 문제가 없고 안심하고 있다면 조만간 혹은 나중에 여러분들은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풍족한 처지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풍족함 (번영) 또한 그것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때는 역경의 때보다 주님께 계속 집중하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또한 번영은 항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역경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언젠가는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압박 중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번영의 때에 가졌던 것과 똑같은 기쁨과 평온 그리고 축복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주변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지속적인 신뢰에 의해 생성되는 안정입니다. (신뢰) 믿음은 우리가 성숙해지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고난을 통한 시험 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시험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기록되어 있는 글로 (성경),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으로 그것을 청구합니다. 민수기 20장에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첫 번째 세대가 실패했던 바로 그 동일한 장소에서 믿음의 장벽을 깨고 믿음의 시험을 통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 3.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chode)
/[meribah]
말하며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이것은 익숙한 불평입니다. 저는 매우 많이 그리고 매우 많은 방식으로 그런 불평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 난 죽었으면 좋겠다. 인생은 너무 어려워! 주님, 저를 죽게 해주세요. 아무도 저같이 힘들게 살지 않아요.


저는 만약 이 사람들에게 일분 내로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도록 위협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서둘러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종종 생각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그들보다 훨씬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그들이 불평을 말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제 광야에서 불평하는 회중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우리 형제들이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이 죽었을 때 진정으로 죽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할까요? 그들의 형제들은 죽음에 이르는 죄로 인해 죽었었습니다 - 신자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너무 자주 너무 오래 실망하시게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 땅에서 제거하셨기 때문에 신자들이 죽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미식 축구의 스타 선수 쿼터백이 “아, 감독님께서 나를 이 경기에서 빼주셨으면 좋을걸!” 이라며 혼잣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실제로 그 경기에서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경기에서 실수를 했다면 오히려 그는 시합에 계속 나가서 그의 실수를 만회하기를 원합니다. 시합에서 단지 실수를 했다고 해서 감독이 그를 경기에서 빼주기를 원하는 미식 축구 선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는 계속해서 시합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계속 경기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신자들이 절망적인 단계에 있으면 그 다음 바로 “죽었으면 좋겠구나” 라고 왜 그렇게 자주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4, 5. 이 사람들은 같은 양상의 문제에 처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제 그들은 모세가 그들을 애굽에서 떠나게 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자로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당하고 나서 말하기를 “이것은 끔찍해. 불신자였을 땐 이런 일은 없었어.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갔어.” 라고 얼마나 많이 말했습니까? 바로 이것을 유대인들이 말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두 번째 세대이며 “이곳[사막]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라고 말한 사람들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집트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된 신자들로서 “아, 이집트로 돌아갔으면”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족쇄(속박) 생각은 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사 감독의 채찍질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즐거운 것들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자들이 “불신자 친구들이 기독교인들 보다 저에게 더 친절했어요. 그들은 언제나 매우 다정했습니다. 모든 것이 훨씬 더 좋아 보였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무화과와 포도와 석류들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압박을 받고 있을 때마다 예전에 여러분이 뭔가 소유하고 있었던 그곳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합니까? 압박을 받고 있는 기독교인이 그의 불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이른바 세상의 쾌락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구원받았던 그가 그 곳을 되돌아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곳을 되돌아 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갈망하는 것을 위하여 기꺼이 그곳으로 되돌아 가려고 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신자로 인식되는 것을 꺼려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절대로 그리스도와의 일체화
(identification with Christ)
를 바꿀 수 없습니다.


여기에 주님을 신뢰하는 대신에 그들의 조상들과 같은 양상에 빠져버린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갈망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 승화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이 그들이 시험 당하고 있는 장소 (사막)와 교체되기를 원했습니다. 불쾌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애굽을 즐겁고 행복한 장소로 생각합니다. “아,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 , 애굽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 거기엔 물이 풍부한데. 왜냐하면 물로 가득 찬 나일강이 있으니까.” 사실 그들은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첫 번째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18)


여러분께 솔직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물이 없는’ 문제에 대해 주님께 감사 드린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문제로 날마다 주님께 감사 드립니까?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 오늘은 당신의 날입니다. 당신의 은혜덕분에 저는 여전히 숨쉬고 있고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오늘 저를 위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아버지, 제 삶이 직면하고 있는 이 역경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라고 기도합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라는 구절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당하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로 자라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영적인 삶이 성공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인정하십니까?  


여러분은 미식축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선수들이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경기장에서 뛴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체구의 크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은 시합하기를 원하고 시합하기 위하여 지금껏 준비해 왔기 때문에 시합에 출전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의 팔 굽혀 펴기, 오리걸음, 달리기, 급히 멈추기, 출발하기, 낙법, 부딪치기, 어깨 밀기와 그 밖의 모든 훈련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훈련과 능력을 테스트하는 기간입니다. 그들은 8월의 염천 하에 훈련을 시작함으로 처음 며칠 간은 거의 죽음입니다. 그들은 매스꺼워하고 아파서 사이드라인 쪽으로 절뚝거리며 가지만 다시 연습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무거운 보호대와 무거운 운동복으로 인해 몸이 둔한 채로 달립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훈련입니다. 훈련하는 처음 며칠 동안에는 “고통스럽게 훈련할 가치가 있을까?” 라고 자기 자신에게 묻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처음 며칠간을 견디어낸다면 여러분의 정신적 자세는 점점 변화합니다. 훈련은 성과를 올립니다. 여러분은 경기장에 나가서 용기와 투지와 힘과 기량으로 시합할 수 있게 하는 신체 동작의 조정력과 근육의 능력을 발달시킵니다.


공개되지 않은 장소, 아무도 연습하는 것을 볼 수 없는 장, 에서 연습하는 동안에 여러분은 지속적으로 테스트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물이 없는테스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집단의 98 퍼센트를 제거하셔야만 하는 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교훈의 말씀이 거의 없고, 성경에 있는 약속들을 청구하는 것도 거의 없음으로 매우 믿음이 약한 신자들의 세대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장벽을 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마련해 두신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쪽을 향하여 뒤돌아 보든가, 혹은 리더십을 살피고, 비난하고, 불평하고 그리고 누군가 딴 사람을 탓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6. 이제 모세와 아론의 태도의 뚜렷한 차이에 주목하십시오.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그들은 바깥 뜰 안쪽에 있는 회막문으로 갔습니다. 이런 위기가 있는 그곳에서 그들은 주님을 찾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이것은 그가 이집트에서 강을 치고
40년 전에 바위를 친 지팡이와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새로운 비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
(
סֶלַע-sela/cela)에게 명하여..” 이 반석이라는 단어는 출애굽기 17:6에서 발견되는 반석 바위-(צוּר-tsuwr)와는 다른 히브리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높이 솟은 (험준한) 바위라는 의미이고 그것은 부활 때의 그리스도의 묘사입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모세는 지팡이를 잡고 바위에 대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한번 심하게 내려치심을 받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바위)께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는 첫 번째 강림 때의 그리스도의 사역, 일생에 대한 놀라운 예증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물론 이 비유는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이 때에 물은 축복이며 (역경을 이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음에 일어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왜냐면 이 일은 모세의 실패 불이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데 인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일 때문에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9, 10.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지금까지 모세는 순종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이것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로 꾸짖으려 하신 것이 아니라 물을 내어 주심으로써 그들을 꾸짖으시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들을 말로 꾸짖으려는 유혹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충분히 참아 왔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질렸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계속 불평하는 것에/ meribahing" 대해 지쳤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에게 권한을 부여해 주셨다면 그는 괜찮을 연설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목이 굳은 패역한 자들’ 이라 부를 권한을 주신 때가 있었지만 여기에선 아닙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에 대해 가르치실 다른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비로우실 것입니다.


11. 하나님의 명령과는 반대로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이러한 불순종 앞에서 “하나님께서 절대 물을 주시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위로부터 물이 나오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모세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물이 바위에서 나옵니다. 은혜의 실례(實例)를 마음에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물을 위해 우리를 위해 한번 내려 치심(처벌)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축복인 그 구원의 물을 위해 부활한 반석(바위)에게 소리 내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부사에 주목하십시오: “물이 ‘많이(풍부하게)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는 모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셔서 처벌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처벌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모세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고 그가 응해야 할 대상은 주님이셨지 회중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모세와 아론은 구원은 되었지만 그들은 이번에 믿음으로 안식에 들어가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장벽을 깨는데 실패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를 므리바[Meribah] 물이라 하니라. Meribah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불신에 대한 경고, 믿음의 장벽을 깨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고를 기억하십시오.

 


Bob Thieme 목사님의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한글 번역본 중 두 번째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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