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과 안식일의 참뜻

/ 박길현 목사(대구언약교회)

 

 

( 12:1-8)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오늘은 주일과 안식일의 참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켜왔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는 주일이라고 생각하고 주일을 지켜 왔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장로교 신앙의 뼈대가 되는 웨스터민스터 대소 교리문답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 교리문답 116문에 보면 이렇게 문답하고 있습니다.

 

"제 사계명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 사계명이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에 명하신 정한 시기 특히 칠일 중에 온 하루를 하나님께 성결 또는 거룩히 지키는 것인데, 이는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제 칠일이고, 그 후부터는 매주 첫 날이 되어 세상 끝 날까지 이렇게 계속하는데 이것이 기독교의 안식일이고, 신약에서는 주일이라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칠일 중에 하루를 거룩히 지키라는 것과 그 하루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제 칠일이고 부활의 날부터 세상 끝날까지는 주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 안식일을 지켰듯이 신약에는 주일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일을 어떻게 지키는 가를 117문에서 설명합니다. "안식일 혹은 주일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온 종일 거룩히 쉼으로 할 것이며, 언제나 죄악 된 일을 그칠 뿐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세상일이나 오락까지 그만 두어야 하되, 부득이한 일(예를 들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먹는 일 즉 밥해먹는 일 따위)과 자선 사업에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시간을 전적으로 공사 간에 예배하는 일에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을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할 것이며, 세상일을 미리 부지런히 절제 있게 배치하고 적절히 처리하여 주일의 의무에 보다 더 자유로이 또는 적절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온 종일 쉬는 것, 다른 날에 할 수 있는 세상일과 오락을 그만 두고, 시간을 전적으로 공사 간에 예배하는 일에 드리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고 제 사() 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요구된 의무를 하지 않는 모든 것과 모든 부주의와 등한함과 그것들을 무익하게 이행함과 이에 지쳐 괴로워함이며, 또 게으름과 그 자체가 죄악 된 일을 하는 것과 세속적인 일과 오락에 대한 일, , 생각들을 함으로써 그 날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서 주일에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하는 일과 심방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운동을 금하고 신문 텔레비전 보는 것을 금하며, 차타는 것과 돈 쓰는 것을 금하고 학생은 공부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갔는데 그 때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에 농삿일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피했으며, 20킬로 이상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가기를 종종 했었습니다. 때로는 피곤하여 길가에서 자다가 차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덮어쓰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공부하기 위하여 도시로 나갔습니다. 거기에는 주일이라고 차타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자가용도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죄의식을 가지는 것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게에 가서 살짝 먹을 것을 사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적절한 대답을 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변해가는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저도 차를 타고 다녔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교회가 세상과 타협해 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절한 성경적인 회답이 없이 세상의 시류를 따라 간다면 그것은 타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답을 찾았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는 것인지 혹은 교회가 안식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바른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답을 찾으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구약의 안식일이 날을 지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구약의 안식일이 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를 구약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 중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안식일은 그림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라고 해석했습니다. 골로새 2:16-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안식일은 구약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오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그림자였습니다. 안식일이 진짜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날을 지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4:5절 이하에서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 할지니라'라는 말씀은 각각 자기가 좋은 대로 알아서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사도는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 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라면 어떤 날도 좋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말은 신자는 날에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주에게 매여 있는 자라는 말과 같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자는 주님 안에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어느 날이나 다 똑 같은 날이라는 말입니다. 이 날은 거룩하고 저 날은 거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이 거룩한 날이라는 말입니다.

 

어째서 모든 날이 거룩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거룩하시니 그 주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거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주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룩한 세계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그의 평생이 거룩하며 안식일인 것입니다. 특별하게 거룩한 한 날이 없다는 말입니다. 신자는 영원히 거룩한 세계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신자를 거룩한 세상에 살게 한 것은 날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 안식은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항상 안식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항상 안식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바로 이 예수님과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 즉 성령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세상 안에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안식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어느 한 날을 특별히 구분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성령으로 하나님과 항상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날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칼빈도 날을 지킨다는 것은 미신적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항상 안식일처럼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고 있으니 항상 안식일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더 거룩하고 다른 덜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날이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모든 날을 안식일처럼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할 수 있는 일은 주일날이라고 해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 또 주일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평소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사는 모든 일들은 다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하지 못할 일은 언제나 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할 일은 날을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에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특별히 거룩한 날이 없고 모든 날이 다 거룩하다면 꼭 주일에 모여서 예배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꼭 주일에만 모여서 예배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형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면 다른 날 모여서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기 시작하여서 지금은 세계적인 휴일로 정착된 날입니다. 이날에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은혜를 되새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일 이렇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매일이 주일과 같은 날이라면 매일 주일과 같이 예배하고 성경도 읽고 기도와 어려운 사람들을 심방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자기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할 수 있도록 정해진 한 날에 모여서 예배하고 성도된 것을 확인하는 것은 세상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날에 성도된 것을 확인하는 것 때문에 그 주간 내내 살아가는 사람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주일 하루의 교회 생활은 성도의 생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주일 하루 교회 생활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기 생활이 깨어지는 것과 같은 긴급한 일이나 혹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주일에 교회에 모여 성도됨을 나누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일 때는 서로를 생각하면서 예의를 지키는 것도 믿음에 부합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임에 알맞은 몸가짐을 하고, 모이는 시간도 지키고, 예배드릴 때는 분위기도 깨뜨리지 않도록 할 줄도 알고, 아이들 관리도 하고, 자기의 맡은 일들을 잘 수행하는 것 등은 믿음에 부합되는 행동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하는 사랑의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행동은 또한 믿음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남을 생각하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한 날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날을 지켜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기념하여 모인 것이 지금은 성도가 예배하는 날로 정착이 되었다면 이날만이라도 더욱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날로 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항상 살아야 하는 것을 못다 했으니 이 한 날만이라도 더 충실하게 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쉬느냐고 할 것입니다. 다른 날은 세상에서 시달리고, 주일날은 교회에서 시달리니 언제 쉴 틈이 있느냐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일날 쉰다고 신자의 심신의 피곤이 풀린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신자는 영혼이 만족하지 않으면 더 곤하고 힘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성도간의 교통을 통해서 성도의 심신은 힘을 얻고 피곤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일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얻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육신도 적당히 쉬도록 하십시오.

 

저는 주일에 종일 붙들어서 교회 일 시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됨을 나눈 후에 남은 시간에 돌아가서 육신도 적당히 쉬도록 하십시오. 가족 친지와 말씀과 정담을 나누고 또는 산보도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습니다. 혹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 또한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것이 성도의 주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주일을 즐거워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이러 주일을 기다리고 준비하도록 하십시오. 또 이런 주일을 만들어 가도록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