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구원

CONFESSION (μολογω)

 

요한1 1 9절 전반부 말씀에 하나님은 미쁘시사 (신실하심) 우리가 지은 죄를 (기억하고 있는 죄) 자백하기만 하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인 삶에 있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신자가 (믿음을 하나님 아버지께 고한 이후) 범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일시적으로 교제 관계가 끊어진 것을 교제 상태로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이 없는 교인의 삶은, 즉 영적인 삶, 결코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 그 교제의 관계가 죄를 범함으로 일시적으로 교제 밖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 상태를 다시 교제의 상태로 회복하는 방법이 바로 ‘자백의 방법-기술-’ 입니다. 하나님과 교제의 상태로 돌아 가게 하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합법적인 은혜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마치 농구 경기에서 선수가 리바운드 볼을 잡아 다시 득점의 기회를 가지는 것과 같은 형상이라고 하여 Bob Thieme 목사님은 <Rebound Technique –자백의 기법-> 이라 명명하였습니다.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 (Faith alone in Christ alone)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순간 우리의 영원한 위치가 정해 집니다. 즉 영생을 은혜로 얻게 됩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 Positional Sanctification = In Christ We are sanctified'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비로소 시작하게 되며 영적인 현상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이 땅에서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 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성령 충만한 상태가 (Be filled with Holy Spirit)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전혀 죄를 범하지 않고 항상 성령님과 교제하며 살아가기란 불가능합니다. 나날이 부닥치는 사람, 제도, 생각, 재난 등에 의해 항상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는 연약한지라 마음으로 범하는 죄 (생각: Mental Attitude Sins), 입으로 범하는 죄, 행동으로 드러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가령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어떤 범주의 죄를 범하게 되면 성령님께서는 죄와 더불어 거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성령님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죄의 본성의 (Old Sin Nature)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성령 충만 하라 (Be filled with Holy Spirit)!' 어떻게 성령 충만 할 수 있을까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은혜 가운데 성령 충만 하는 방법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요한1 1 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신실하신 하나님께 (God the Father: 하나님 아버지께) 자백 하면'에서 자백의 원 뜻은 고대 사회의 법정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원어에서 사용된 동사 Homologeo (Admit, acknowledge, cite, name) 란 법정에서 사용되는 말로 죄인이 범한 죄를 법관 앞에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 때 법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감정이 개입될 수 없으며 지극히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심판 받으실 때 인류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어깨에 지우시고 그 모든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인류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의 죄) 이 땅에서 범하는 모든 죄들을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미 심판하셨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언제 무슨 죄를 범할지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법정의 판례에 의해 사면 조치가 -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 아버지께 자백만하면 예수님께서 그 모든 죄에 대해 이미 심판 받으셨고 죄가 용서되었음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판례에 따라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정확하시며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이 은혜로운 방법에 의해 우리는 다시 리바운드 볼을 잡은 상황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는 그 순간처럼 하나님과 교제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처럼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완전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상태에 따라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가 달라질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 우리에게 전가시켜주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를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늘어나고 줄어들 수 없습니다. 한결 같으십니다. CHESED - UNFAILING LOVE의 능력으로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성령 충만이란 다른 의미로 해석됩니다. 성령님과 교제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게 자라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이냐 육적이냐 이지 그 중간은 없습니다. 성령님과 교제하고 있을 때 다시 말해 생각, , 행동 등의 범주의 죄를 다 자백했을 때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성령 충만 즉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인 것 입니다. 성령님의 지배 하에 있게 되는 상태입니다. 아니면 죄의 본성의 지배하에 있게 되든지......

이 교훈의 말씀이 신자가 된 이후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입니다. 성령 하나님과 교제함이 없이 기독교인으로서 행하는 것, 그 어떠한 봉사나 혹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의 의로 행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께 신령과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진정 (진리의 말씀에 의하여)으로 예배 드려야 한다고 말씀 하신 우리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 성령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상태 이것이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됩니다. 성령충만 곧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의 성령 강림에 대해 먼저 떠 올리고 바로 그런 현상이 성령 충만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습니다. 그 이후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의 역사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 강림)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도 예수님을 먼저 구세주로 믿은 후 열심히 모여 성령 강림을 사모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성령 세례를 은혜로 주신다고 믿고 열심히 그렇게 따라 가는 종파도 있습니다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를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 세례인 것입니다. (방언과 통변과 예언 등등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날 것이라 믿는 것은 잘 못된 가르침이거나 제 욕심에 따라 믿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인 현상을 알 수 없고 말씀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우리의 거미줄과 같은 연약한 믿음으로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을 할 때에 성령님의 강한 능력으로(Efficacious Grace / 유효한 은혜로 즉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효과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도록 하는 것) 우리를 구원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 즉 성령 하나님과 항상 교제함으로써 그의 능력을 공급 받아 이 땅에서 영적인 삶을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됩니다.

기독교인의로서 삶을 하나님 앞에 세상 앞에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 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를 드리거나, 찬송을 하거나 말씀 공부를 할 때에 성령님과 교제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단지 학문적으로(GNOSIS/지식) 이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지혜로는(EPIGNOSIS/지혜) 되지 않습니다. 교제 밖에서의 모든 섬김은 하나님의 의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로 행하는 것이 됨으로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구원 받은 이후에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바로 "리바운드 기법 - 죄의 자백"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교제함이 없이는 교회 봉사와 예배, 헌금 등 이 모든 것은 자기의 의로움만 (Self- righteousness) 쌓게 하는 교만에 빠지게 합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미리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이 놀라운 은혜의 장치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삶의 중요한 근간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고 이 기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자기의 의만을 쌓고 자기 영광만을 나타내는 것이 됩니다. 성경 말씀은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먹든지 심지어 무엇을 마시는 것 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하라고 하십니다.

 

이사야서 64: 6에서 사람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아서 (Filthy rags: 더럽고 냄새 나는 걸레, 넝마라고 영어로 표기 되어 있지만 히브루 원문의 뜻은 여자의 월경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의로운 채 하여도 우리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더럽고 냄새 나는 걸레 조각이나 마찬가지로 보이니 우리가 의로운 채 하면 할수록 하나님 앞에서는 더 비참해지고 더 형편없는 쓰레기와 같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의를 결코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요한1 1 9절 말씀에 따라 죄의 자백이 선행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올바른 자백 없이도 교회 생활 혹은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과 상관 없는 신앙생활이 되며 예배가 되며 봉사가 되고 만다 든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백할 때는 마치 법정에서처럼 감정이 절대 개입되어서는 안됩니다. 범한 죄를 사실 그대로 낱낱이 하나님 아버지께 고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따금씩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것 조차 바로 거짓말이 되는 꼴이 됩니다. 절대 감정이 개입된 자백을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지은 죄를 인정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기에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해 은혜로운 자백의 법칙을 마련해 두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지요!

 

예를 들면 내 친한 친구 아무개를 미워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자백할 때 "하나님 아버지 아무개를 미워했습니다" 즉 생각으로라도 지은 죄를 하나님 아버지께 범한 죄 그 자체만을 인정하고 고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백인 것입니다.

 

혹 이런 경험은 없으십니까?

어떤 지은 죄를 고백할 때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아버지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그 이후 정말 그런 죄를 다시는 범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마 대답은 '아니 또 그런 죄를 수 없이 범했다' 고 대답하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 왜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자백하는 그 순간에도 앞으로 범할 죄에 대해 스스로 올무를 지우며 거짓 맹세까지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먼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교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또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쉽게 지은 죄를 요한일서 1 9절 말씀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인정만 하면 용서함 받을 수 있다면 (엄밀히 말하자면 교제를 회복한다는 표현이 옳을 것 입니다) 그러면 자백의 법칙은 죄를 짓게 하는 면허 (License to commit sin) 란 말이냐고? 반문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징계를 하십니다. 하나님과 그 자녀 간의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None of our business' 입니다. Rebound Technique 의 의미가 말해주듯이 연약한 신자가 이 땅에서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태에서 영적인 삶을 올바로 살 수 있도록 그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시며 전지 전능하신 특성을 모르고 하는 단지 기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9절 후반부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죄 혹은 알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도 앞 부분의 죄(알고 있는 죄)를 자백함으로써 기억해 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cleanse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심) 해 주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자백 할 때에 결코 감정에 치우쳐서 하시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무효가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보혈의 공로가 단지 자백하는 것 만으로는 내 죄를 용서하시기에는 부족하기에 감정도 –내 노력을- 보태는 것이 됨으로 이는 하나님 완전하신 은혜를 가치 없이 만드는 불신이 되고 맙니다) 왜냐면 그 감정이 나의 영적인 삶을 헤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19절 말씀에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κοιλα (감정)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에서 여기서 배는 식탐이 아니라 Feeling / 감정이라는 의미가 더 적합할 것입니다.

 

은혜의 하나님께 오로지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리바운드 기법을 (죄의 자백의 법칙) 겸손히 활용하여 영적 거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삶, 그 삶을 위하여 오늘 하루도 허락 받았음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의 올바른 삶은 바로 요한 일서 1 9절 말씀의 올바른 적용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 죄의 자백의 법칙을 제대로 활용하여 승리하는 영적인 삶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 Bob Thieme 목사님의 책과 Max Klein 선교사님의 저서와 말씀에서 간추린 내용입니다.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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