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이 전부가 아니다

마셜 데이비스 | 이용중 역 |부족한 기독교&충분한 기독교 | 2009-07-01

 

[책 소개]

본서는 미국에서 발행된 많은 릭 워렌 비판서 중 최근에 나온, 가장 건설적인 비판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은 새들백교회의 기원, 신학, 목회철학과 방법, 예배 등과 ‘목적이 이끄는 삶’의 믿음과 실천에 대한 바르고 성경적인 분석과 평가를 통해 릭 워렌의 복음과 그가 말하는 기독교가 왜 충분치 못한지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순간의 달콤함이 아닌 저 영광스러운 안식과 기쁨을 주는 성경적/역사적 기독교의 위대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가

릭 워렌의 베스트셀러를 읽고 “과연 이게 전부인가”라는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릭 워렌의 베스트셀러인 『목적이 이끄는 삶』과 『목적이 이끄는 교회』(국내에는 『새들백 교회 이야기』로 번역됨)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구도자 중심적인 사역 모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마셜 데이비스 박사는 이 책에서

-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대형 교회 운동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 교회 성장 운동과 로버트 슐러의 자기존중 복음에서 릭 워렌의 접근 방식의 기원을 탐구한다.
- 워렌의 새들백 교회 신학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것이 역사적 기독교에 못 미치는 신학임을 논증한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의 시장 중심적 방법론과 철학적 실용주의를 폭로한다.
-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예배 방식이 어떻게 복음주의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보여 준다.
- 뉴 에이지 영성이『목적이 이끄는 삶』의 신념과 관행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힌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21세기의 교회에 온전함을 회복시켜 줄 복음주의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서론]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고 나자 나는 마치 슈거런드의 “뭔가 부족해(Something More)”라는 히트곡의 후렴구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그 책은 내가 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매료시킨 책이었다. “목사님, 꼭 읽어 보셔야 돼요!” 내가 그 책을 사는 데 별 관심이 없는 내 속마음을 마지못해 밝힐 때마다 그들은 그렇게 고집스럽게 말했다. 주변의 여러 교회에서 “목적이 이끄는 40일”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리는 깃발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예수님의 부활절 방문을 놓친 제자인 도마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이 신앙생활에 대한 기본 필독서도 읽지 않은 지상의 유일한 목사가 되기 싫어서 나는 월마트에서 그 책 한 권을 샀다. 그런데 그때의 경험 자체가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직 음란한 연애 소설들 바로 옆의 서가에 진열된 신학 책을 사는 데 익숙하지 않다.

 

내가 그 책을 구했을 때는 이미 책 표지에 그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음을 알리는 금색 별들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었다. 책 뒷면에는 빌리 그레이엄과 프랭클린 그레이엄, 맥스 루케이도, 리 스트로벨 같은 내가 존경하는 설교자들과 저자들의 추천사가 쏟아졌다. 그레이엄 부자는 책 표지에서부터 내게 이렇게 재촉했다. “당신의 삶의 핵심을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이 책을 읽으십시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당신을 위대함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위대함을 예상하고 나는 아직 내가 상상해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나의 사역을 변화시켜 줄 21세기를 위한 성령의 능력을 받은 복음 제시를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나는 소화 불량에 걸렸다.

 

나는 왜 나의 영적인 소화 기관에 탈이 났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책 내용이 전부 다소 세속적으로 보였다. 왜 사람들은 그 책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그 책은 몇몇 군데에서는 통찰력이 있지만 심오한 책은 아니다. 다섯 가지 목적(예배, 교제, 제자도, 사역, 전도)은 어떤 신입생 교양 필수 과목에서도 다 나오는 이야기다. 워렌은 심지어 이 책에서 강단 초청(altar call)까지 했다. 평소 같았으면 전도하고 싶은 마음에 불이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도 초청에도 내 마음에는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난 대체 뭐가 잘못되었을까? 왜 나는 새들백 교회의 사역 모델을 당장이라도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전혀 못 느꼈을까? 혹시 무언가 놓친 것이 있는지 보려고 그 책을 다시 읽었다. 그제야 나는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집에서 만든 팬케이크를 좋아한다. 상자 속에 담겨 있는 미리 다 만들어진 인스턴트식품이 아니라 프라이팬으로 직접 구운 팬케이크 말이다. 나는 팬케이크를 먹을 때 순도 100%의 단풍 시럽만 부어 먹는다. 100%가 아니면 내 입맛에는 안 맞는다. 어느 토요일 저녁에 아내가 팬케이크 몇 개를 프라이팬으로 요리해서 내 앞에 먹음직스럽게 차려 놓았다. 평소 먹던 팬케이크와는 무언가 좀 달라 보이긴 했지만 나는 그 위에 단풍 시럽을 붓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먹자마자 팬케이크 속에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것을 당장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눈치 채고 맛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이거 당신이 평소에 요리하던 대로 만든 거야?” “물론이죠. 항상 똑같이 만들잖아요.” 몇 분 동안 침묵이 더 흐른 뒤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베이킹파우더를 깜빡하고 안 넣은 것 같아요.

무언가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 팬케이크는 평소 먹던 것과는 달라 보였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가볍고 부풀어 있는 팬케이크가 아니었다. 맛도 달랐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뭐가 빠졌는지 말하라면 아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도 무언가가 빠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눈치 채지만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냥 막연히 그러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목적이 이끄는 삶』에는 빠져 있는 것이 많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목적이 이끄는’ 교회 성장 모델의 배후에 깔린 역사와 철학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많은 연구와 생각과 기도 끝에 나는 『목적이 이끄는 삶』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탄광 속의 카나리아’(카나리아는 유독성 가스에 민감해서 유독 가스가 새어나오는 곳에서는 금방 죽기 때문에 예전에 광부들이 탄광 안에 유독 가스가 차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카나리아를 탄광 속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로 위험을 미리 알려 주는 지표라는 뜻―역주) 같은 책이라고 결론지었다. 지금 당장 교정책을 취하지 않으면 복음주의가 어떤 암울한 미래를 맞게 될지를 이 책은 미리 보여 준다.

 

새들백 교회는 캘리포니아의 신흥 이단이고 릭 워렌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짐 존스(집단 자살로 막을 내린 인민사원이라는 사교 집단의 교주―역주)여서가 아니다. 기독교의 신앙과 실천을 바라보는 새들백 교회의 관점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구도자를 위한 책이기는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목적이 이끄는’ 복음과 역사적 기독교와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워렌의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다 만들어져 나온 팬케이크에 단풍 시럽 맛이 나는 옥수수 시럽을 부어 먹는 것과 같다. 나는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집에서 만든 팬케이크를 먹고 단풍나무 수액이 양동이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다. 나 같은 뉴잉글랜드 사람에게는 따끈따끈한 1등급 단풍 시럽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 릭 워렌의 베스트셀러는 그리 깊이가 있지도 않고 폭이 넓지도 않다. 이 책은 더 많은 것, 『목적이 이끄는 삶』보다 더 깊고 더 폭넓은 것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릭 워렌은 자신의 ‘목적이 이끄는’ 사역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남부의 파도타기를 비유로 즐겨 사용한다. 실제로 그는 『목적이 이끄는 교회』의 서론에 “영적인 파도타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성령님이 파도를 일으키신다고 본다. 그리고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파도를 타는 법을 가르치려 한다. 파도는 물론 존재한다. 사실 오늘날 미국의 영적인 상황은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상황이다. 워렌은 확실히 캘리포니아의 파도타기 선수처럼 파도를 잘 타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는 성령의 파도라기보다는 미국의 문화적 경향의 파도를 타고 있다.

 

릭 워렌이 캘리포니아의 어느 평범한 침례교회 목사에 불과하다면 나는 그의 말을 태평양 연안 사람들의 열정적인 기질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워렌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지지자들을 얻고 있다. 워렌에 대한 조지 메어의 칭찬 일색인 전기인 『목적 있는 삶』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가장 영감 넘치는 목회자 릭 워렌”이다. 이 책에서 메어는 워렌을 “종교계의 전설”,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개신교 설교자”,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개신교 종교 지도자”라고 부른다. 그는 워렌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에 세계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워렌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외양을 바꾸어 놓고 있는 한 운동의 일부를 이룬다. 그는 그 운동을 다름 아닌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종교개혁은 믿음에 대한 개혁이었던 반면 지금의 종교개혁은 행동에 대한 개혁이다.......첫 종교개혁은 신조에 대한 개혁인 반면 지금의 종교개혁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개혁이다. 첫 종교개혁은 교회를 분열시켰지만 현재의 개혁은 교회를 연합시킬 것이다.” 그는 자신을 종교개혁자의 옷을 입고 복음주의의 문 앞에 자신의 다섯 가지 목적을 내건 새로운 마르틴 루터로 보고 있다. 2005 4 17일에 엔젤 스타디움에서 열린 교회 창립 25주년 기념식에 모인 3만 명의 교인들과 참석자들 앞에서 워렌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소망은 교회 안에서 새로운 개혁이 일어나고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영적 각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워렌이 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대형교회 운동을 간과할 수 없다.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을 때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했던 바울처럼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할 필요가 있다( 2:14, 11).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복음은 기독교적인 개혁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교회 전통 속에 가려진 성경적 복음의 회복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복음에 대한 재해석이다.

 

나는 워렌의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나 그의 신실함이나 불신자들을 전도하려는 그의 열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전했던 바로 그 오래된 신앙을 전하되 다만 새로운 방법으로 전하고 있다고 굳게 확신한다. 사실 그가 만들어 낸 형태의 기독교는 과거의 주류 개신교 자유주의가 21세기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존 맥아더는 복음주의가 최근 몇 십 년 동안 엄청나게 변화되었다고 말한다. 변화가 너무 극적이어서 오늘날의 이른바 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크리스 애커디는 워런의 복음을 “신 자유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부른다.

 

‘목적이 이끄는’ 기독교도 여전히 기독교다…….잠시 동안은.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영역으로 미끄러져가는 생략된 형태의 기독교다. 러져가기독교적인 요소들이 생략되었고 러져가세속적인 요소들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다음 번 씨 뿌릴 때는 그 특징적인 복음적 성격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교배종이다. 맥아더는 이렇게 말한다. “교리적 타협의 바람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바람은 릭 워렌이 타고 있는 파도를 밀어 올리는 바람이다.

 

이 책의 목적은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복음주의의 유산과 본질을 되찾을 대안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한 신흥 종파에 대한 폭로가 아니라 주 안의 한 형제에게 주는 권면이다. 나의 목표는 워렌이나 그의 사역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워렌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주변에는 그들에게 고통스런 진실을 말해 줄 만큼 정직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워렌 자신도 그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왕궁 선지자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기와 다른 의견을 듣기가 어렵게 되었다. 교회 성장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그의 교회를 떠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 책은 진실을 말하려는 나의 노력이다. 이 책의 내용이 그에게 고통스럽게 느껴질지 그렇지 않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고통스럽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나는 아마도 찰싹 때려 주고 싶은 성가신 모기에 불과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에서 워렌은 때때로 자신의 신학적 정통성에 도전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주 고객”에서 제외시킨다. 그래서 나는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에 소재한 그의 교회에 고통을 가져다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자들이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에는 워렌이 보여 주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통찰력을 주고 싶다.

 

 

저자: 마셜 데이비스

 목회 경력 30년의 침례교 목사다. 켄터키 주 남 침례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펜실베니아 주 로체스터 제일침례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데이비스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매료시킨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고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느끼고 ‘목적이 이끄는’ 교회 성장 모델의 배후에 깔린 역사와 철학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많은 연구와 생각과 기도 끝에 기독교의 신앙과 실천을 바라보는 새들백 교회의 관점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워렌이 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경고해주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복음은 성경적 복음의 회복이 아니며 복음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복음에 대한 재해석이며,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기독교가 잠시동안 기독교이기는 하지만 많은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생략되고 많은 세속적인 요소들이 도입된 위험한 영역으로 미끄러져가는 생략된 형태의 기독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준다.


역자: 이용중

서울대학교 사범대 졸업 후 KBS 취재 기자로 활동하다가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등을 책을 만나 이후 좋은 번역의 가치를 절검하고 기독교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현재 도작들의 신앙 성장과 영적 성숙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양서들을 쉬운 우리말로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재학 중이며, 역서로는『목회 황제 스펄전의 목사론』,『십자가와 구원』,『하나님 중심적 세계관』등 삼십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