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가?

 

 ·척 스미스 (미국 Calvary Chapel담임목사)

 

그동안 해 오던 성경 안으로의 여행을 계속하여 우리는 이번 주 사도행전 12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 한 번씩 읽어오시고, 오늘 저녁 7시에도 빠지는 분 없이 모두 참석하셔서 함께 사도행전 1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중에 특별히 1절과 2절을 보기 원하는데, 성경은 이 부분에서 잠시 우리들에게 역사적인 사실을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이 무렵에 헤롯 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하였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이것은 헤롯 아그립바 1세를 말하는 것으로 그는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서 자주 로마에 가서 도박으로 돈을 다 탕진한 후 큰 빚을 지고 돌아오곤 했는데, 돌아와서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뜯어가면서 살다가 한번은 다시 로마로 돌아가 칼리귤라 황제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어느날 이스라엘의 왕으로 책봉된 그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확고히 세우기 위해서라도 유대인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환으로 여기 나온 것처럼 교인들을 잡아들이고 야고보의 목을 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이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한 때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이 땅에 세우셨을 때 누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일종의 경쟁을 벌이곤 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자주 논쟁을 일삼곤 하였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이 일을 위한 로비에 심지어 그들의 어머니까지 동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기를부탁이 하나 있사온데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시게 되면 제 두 아들 중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또 하나는 주님의 왼편에 낮게 해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하는구나. 네 아들들이 나의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고, 이 때 요한과 야고보는 곁에 서 있다가그럼요, 주님! 마실 수 있고 말고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너희가 과연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리라!’고 예언하셨었습니다.
이제 야고보는 여기서 순교함으로써 그 잔을 마신 것입니다.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일설에 의하면 야고보는 사람들이 그이 사형집행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답지 않게 매우 담대하였고, 야고보를 고소했던 장본인은 이에 크게 감동하여 그 자신도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나서 야고보가 혼자 순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서 그와 함께 순교했다 합니다.

헤롯왕은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다가 며칠 후 사형을 집행할 의도로 옥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주의 사자가 옥중의 베드로에게 나타나 두 군사들 틈에 누워 자고 있는 베드로를 깨웠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감옥에는 베드로를 지키기 위해 네 명의 군사들이 한 조를 이루어 4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었지만, 주의 사자 즉 천사가신을 신고 나를 따르라고 하자 베드로의 손에서 쇠사슬이 스르르 벗겨지고 베드로는 곧 그 천사를 따라 나설 수 있었습니다.

첫째 문을 지나고 둘째 문을 지나 감옥소 정문인 쇠문에 다다랐는데, 이 문 역시 저절로 열리면서 천사는 베드로를 인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한 블록 쯤 지나 천사가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베드로는 그제사 정신이 들어 이 일이 이상(異像)을 보는 것이 아니요, 실제로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온 교회가 모여 기도하고 있는 집으로 갔었지요.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헤롯왕이 야고보를 죽이도록 내버려 두셨으면서도 베드로는 기적을 베푸사 죽음으로부터 구출해주신 것입니까? 왜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야고보도 기적적으로 구출해 주실 수 있었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안하신 것입니까?
우리는 조종 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허락하셨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어 고민하는 적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의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도 그런 식으로 이해 못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고통, 슬픔, 실망을 주는 일들이 참으로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런 일들로부터 우리들을 구출해 주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런데 왜 안해주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 흉측한 사고가 일어나게 허락하셨고, 왜 저 몹쓸 사람이 내 소중한 물건을 훔쳐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막아주실 수 있었는데도 막아주시지 않은 겁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이왜 그러셨는지를 알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너희들과 나는 생각이다르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이 순간의 혜택, 이 순간의 편안함, 이 순간의유익만을 생각하는 데 반해,하나님은 항상 영원의 세계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영원히 미칠 효과와 혜택, 혹은 유익이 무엇이냐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는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즉 미래를 아신다는 강점이있습니다. 저는 되도록 제가 아는 모든 사실들을 다 고려해 보고 제가 내릴 결정이 가져올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다 살펴본 다음에야 비로소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제가 내리는 결정은 불완전한 결정일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부분적인 정보에 의존해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예틀린 정보를 받아 결정을 내릴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일을 저지를 때가 많습니다.

다만 제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고, 또 제가 바른 결정을 내리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많은 결정들이 모두 다 바른 선택임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도아차!’라고 말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며, 시작할 때 이미 그 끝이 어떠할 것인지도 미리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판단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바울이 우리들은 찾을 수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에게 어떤 어려운 일을 허라하셨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저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왜 저 어려운 일들을 우리 앞길에 놓이게 하셨는지에 대해 저는 종종 의문을 가지곤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을까?”

만일 왜 하나님께서 험한 일들을 허락하셨는지 궁금해 할 권리를 가진 사람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욥은 사람이 잃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잃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선한 것을 사랑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내리신 평가에서 떠난 사람이었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내리신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던 그는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허락하시는 바람에 열 명 자녀들을 한꺼번에 사고로잃는 고통을 겪었으며, 곧 자신의 건강마저도 잃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모든 어려운 일들이 닥쳤을 때 욥은 왜 하나님께서 그리하셨는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욥기에 보면 욥이어찌하여…?’ 하고 묻는 대목이 많이 나옵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그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욥은 자신이 가졌던 혼동과, 이해의 부족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에 대해
‘그가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할 것이요(13:15)'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그가 비록 하나님의 길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길 것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사악한 헤롯왕이 야고보를 죽이도록 허락하셨습니까? 그리고 왜 같은 처지에 있던 베드로는 헤롯의손으로부터 구출해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일들을 왜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형통케 하시고, 의인은 종종 핍박을 받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입니까? 이런 의문들은 고난과 시험을 통과해야 했던 의인이라면 공통적으로 누구나 다 한 번씩은 품어봤던 의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성경기자는 구약시대에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위업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그들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만났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 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들, 이 믿음의 용사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당하기도 했으며, 돌에 맞고 톱으로 켜지는 잔인한 시험과 칼에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당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낼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이것을 내가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루스드라를 떠나며 그곳 사람들에게
권면하기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서신에 적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핍박을 당하며, 시험, 그것도 불시험을 받고 모욕을 당할 것이라고 선포해 두셨습니다. 그렇지만 왜 그래야만 합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겠습니까? 만약 내가 의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면, 또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애쓴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나를 두드려 패고, 방해하고, 고난이나 고통이나 기타 어려운 일들을 내게 가져다주는 것을 허락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 해답은우리는 모른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설명해 주시지 않는 쪽을 선택하시고 나서, 단지
‘내 길은 너희들이 찾지 못할 것이다.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사흘 동안 정신적 고문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음을 잘 압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그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한 산으로 가서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이삭과 함께 헤브론에서 모리아 산까지 사흘 길을 가는 동안, 그것은 사흘 동안의 정신적 고문이요, 지옥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사흘 동안 아브라함은 그토록 사랑하는 이삭을 돌아다보며, 왜 하나님께서 저 아들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라고 요구하셨을까 곰곰 되새겨 보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고문, 바로 고문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허락하실까?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런 일을 요구하실까?”

아브라함이 마악 그 아들 이삭의 몸에 칼을 꽂으려 하는 순간! 우리들은 그 이야기가 어찌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 멈추게 하시고
‘수풀에 뿔이 걸린 수양이 한 마리 있으니 그것을 잡아 제사로 드리라’고 하시면서, ‘이제 네가 나를 온전히 믿고 의지할 것을 내가 알았으니 그것을 인하여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를 통하여 메시아가 오게 하리라. 메시아가 네 자손이 되리라’고 하셨지요.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이 결과적으로는 온 세상에 복을 가져왔지만, 그 과정은 고문과 같았고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 고난과 고통과 슬픔이 들어오도록 허락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또 하나님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단히 사랑하신다는 것도 압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과, 우리를 무엇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리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들을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누구도 하나님의손을 금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모든 상황들과 모든 문제들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 외에는 그 어떤 일도 제게 일어날 수 없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또,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저를 부르셨으므로 모든 것들이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는 제가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어떻게 그 일이 선한 일이며, 그 일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들을 제 삶 가운데 허락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제 저는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햇수보다 훨씬 더 많은 햇수를 뒤돌아 볼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거의 한 바퀴를 다 돈 시점에서 지난 일들을 돌이켜본다는 이점을 가지고 그동안 제가 살아온 인생길을 뒤돌아보니,
지난 날 하나님께서 제게 경험하도록 허락하셨던 저 많은 어려웠던 순간들,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그리고 그 고난과 실망들에 깃들여 있던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들이 이제 눈에 들어올 때도 더러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하나님께서 그 때 무얼 하고 계셨는지 어느 만큼은 볼 수가 있더란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사용하셔서 내 속에 연단받은 인격을 빚어내셨고, 나라는 미물(微物)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도구로 만들어 가셨는가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야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왜 그 일들을 허락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왜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는 이애할 수 없었던 저 많은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르는 일을 당하게 되면 그곳에 머물지 않고 아는 일들로 되돌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선하시며, 나를 무엇보다 더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모든 상황과 문제들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일들 가운데, 또 이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으로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할 일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의뢰하는 것이요, 내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에 대한 해답은 알거나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맡기는 데 있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이해하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저를 옮기시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았는데, 누구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너희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을 받을 때 사라져 없어지는 금보다도 더 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고 맡겼을 때, 저는 비록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제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한 제 마음은 계속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한밤중에도 이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인가하나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시니 제 길을 다 하나님께 맡기겠나이다하고 고백하는 순간 나는 크나큰 평안을 체험하게 됩니다
. ‘주께서 마음을 주께로 돌리고 있는 자를 온전한 평강 속에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선지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 마음의 눈을 코앞의 문제에다 두지말고 주님에게로 초점을 맞춘 다음,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께서 아시기에 가장 좋을 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해 보십시오.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말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또 이르기를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 말하기를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고통을 겪고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맞아 참으로 왜 하나님께서 그같은 일들을 허락하시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면, 베드로는 말하기를 여러분들의 영혼과 마음을 신실하신 조물주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수 있도록 그분께 맡기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그리고 저는 하나님께 맡겼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그 영원하신 뜻을 제 삶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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