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최초의 유혹(4:1)(믿음)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정도를 알아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땅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인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40일간 금식하신 것을 계기로 사순절 제의를 제정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까닭에 우리도 그가 행하셨던 대로 행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40일간 금식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40일간 금식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를 따라야만 한다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똑같이 40일간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말아야만 하며, 물위를 걸어가야만 하고, 우리의 말로써 귀신을 쫓아내야만 하며,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어야만 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내야만 할 것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지금 스스로 자기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의 공허함과 우둔함을 폭로하기 위하여 이처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존 낙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4:1)

 

내가 오늘 이 성경 말씀을 본문으로 택한 이유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섭리로 인하여 여러 가지 유혹에 빠져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로 인하여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용납되어질 수 없는 자로 판단하지 말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람들은 사탄의 간교한 공격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쁨 가운데 용감하게 이 유혹에 대처해 나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우리의 승리를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으며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복음의 무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굳건한 신앙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구속자이신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나님의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의 설교를 잊지 말고 언제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기서 먼저 유혹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며 또한 성경에 어떻게 사용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고, 둘째로 누가 이러한 유혹을 받았으며 언제 이러한 유혹이 임하였는가를 살펴보고, 셋째로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것을 통하여 유혹을 받으셨는가를 살펴보며, 넷째로 왜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유혹을 받으셔야만 했으며 또한 이러한 유혹이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주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경에 있어서 '유혹한다'는 말은 인간의 용기나 힘이나 의지나 즐거움이나 지혜가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속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이를 시험해 보거나 이를 타진해 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 유혹이라는 말은 좋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신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정도를 알아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땅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인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항상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유혹은 인간의 마음의 동향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에 받아들이신 자들에게 베푸시는 바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부여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시험이 없었더라면 어느 누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자기 손으로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잡아 바칠 결심을 하게 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누가 욥이 그처럼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누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그처럼 많은 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거두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약속된 땅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을 인도해 주시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지 않으셨더라면 과연 어느 누가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사실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유혹은 유익하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 이러한 종류의 유혹은 인간이 이러한 유혹을 받을 때 이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품든지 간에 모든 선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시험받는 자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인간에게 내려 주시는 유혹인 것입니다.

 

이 이외의 다른 유혹들은 악한 것들로서, 사탄이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기 위하여 인간에게 가하는 유혹들입니다. 이 유혹은 사탄이 에덴 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하고, 여러 가지 시련으로 욥을 시험하고, 색욕으로써 다윗을 유혹하고 또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여러 가지 수단과 질문으로 예수를 시험한 그러한 유혹입니다. 야고보는 바로 이러한 유혹과 시험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1:13)고 말하였다. ,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시험과 유혹은 결코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만 할 것은 비록 사탄이 때로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탄은 자기의 최종적인 목적을 결코 달성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유혹을 통하여 이브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들을 영원히 자신의 사슬 아래 매어 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욥에게 욥의 모든 재물들과 자녀들을 앗아가고 그의 몸에 가장 지독한 고통을 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욥의 입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거스르는 말을 나오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우리에게 아무리 가혹한 시련과 유혹을 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탄의 손에서 구출해 내사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한층 더 크게 떨치시며 이로써 사탄으로 하여금 스스로 좌절에 빠지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매우 강하시며 그의 선하심이 매우 신속히 움직이시사 우리가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을 때, 마치 다윗이 사자의 입에서 자기의 양을 구출해낸 것처럼, 우리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만 가지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보다도 극도의 위험 가운데 지극히 작은 도우심을 받는 것에 대하여 더 큰 감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만 가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은 우리를 그 유혹에서 구출해 주시는 것과 똑같은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입니다. 단지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 연고로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또한 "시험하다"라는 말은 어떠한 결정적인 목적이나 유익에 대한 추구 없이 단순히 어떠한 것을 입증해 보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우리는 시험되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나 증오의 감정을 품지 않은 채 단순히 우리가 의혹을 품고 있는 것을 시험해 봄으로써 그 진위를 가려내곤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갑옷을 입고 싸울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았습니다(삼상17). 그리고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었다. "주님, 저에게 노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번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양털뭉치로 한 번만 더 시험하여 보게 하여 주십시오. 이번에는 양털은 마르고, 사방의 모든 땅에는 이슬이 내리게 하여 주십시오.""(6:39)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과 그의 명성을 믿지 않고 그에게 여러 가지 난해한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사랑이나 증오의 감정 없이 그저 단순하게 그의 지혜를 시험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익숙지 않은 갑옷을 입고 싸울 수 있는가 시험해 본 연후에 평상시의 차림으로 중무장한 골리앗 앞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마음이나 증오의 감정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표적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소명에 대한 두 번째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시험하라고 명하였을 때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즉 우리 자신이 믿음 안에 굳건히 서 있는가를 항상 주의 깊게 되돌아보라는 의미에서 말했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유혹을 받았던 사람과 그가 유혹을 받았던 때와 장소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유혹을 받았던 사람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셨으며, 그가 유혹을 받은 때는 그가 세례를 받으신 직후였고, 그가 유혹을 받으신 장소는 광야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외아들께서 이처럼 유혹을 받으신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 즉 유혹이 아무리 두렵고 떨리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하나님의 자비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으며 오히려 사탄으로 하여금 우는 사자와 같이 격분하여 날뛰도록(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자녀로 삼으신 자들을 삼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날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다 크신 은총을 부여해 줄뿐이라는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유혹을 받으신 때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고찰해 보아야만 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리스도 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지받으시고 이 사실이 성령의 표징인 비둘기를 통하여 가시적으로 나타난 후에 곧바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에 인도되어 광야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면서 야수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광야로 인도한 이 영은 악령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영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인성 가운데 이 영의 인도하심을 받으셨으며, 또한 이 영에 의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를 전쟁터로 인도하셨으며 그는 이 광에서 40주야 동안 사탄과 전쟁을 벌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는 계속적인 금식으로 인하여 무척 배가 고프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언하자면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40일간 금식하신 것을 계기로 사순절 제의를 제정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까닭에 우리도 그가 행하셨던 대로 행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40일간 금식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40일간 금식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를 따라야만 한다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똑같이 40일간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말아야만 하며, 물위를 걸어가야만 하고, 우리의 말로써 귀신을 쫓아내야만 하며,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어야만 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내야만 할 것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지금 스스로 자기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의 공허함과 우둔함을 폭로하기 위하여 이처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미신적인 금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40일간 금식하셨던 것입니까? 어느 누가 그리스도께서 40주야를 금식하셨다는 사실을 내게 확신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주야를 금식하셨다고 합시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때가 언제인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설혹 성경에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때가 명시되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나나 기독교인들 모두는 마치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내듯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행동을 흉내내야만 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참된 추종자들에게 이러한 순종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28: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직접 명하신 것 외에는 그의 행동이 아니라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을 요구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는 그리스도를 뒤쫓는 자들이 되라"고 말하였을 때 그는 그리스도의 행위나 놀라운 사역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성직자들은 그들 자신의 꿈과 환상을 성취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훈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대한 절제에 대하여 40일간 금식하신 것 외의 다른 방법은 전혀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던 것으로 생각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40일간 금식하신 참된 이유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의 교만에 보복을 가하시고, 이들의 지혜를 혼란시키시며, 그들의 귀와 눈을 멀게 하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그 말씀을 빛을 따를 수 없게 해 오시고 계십니다. ! 주여! 우리를 이러한 가련한 자들로부터 구해 주소서!

 

그리스도께서는 40일간 금식하심으로써,

첫째로 그 자신이 세례를 받으신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던 소명의 위엄과 뛰어남을 이 세상에 입증해 보이시고,

둘째로 그 자신이 우리 죄 많은 인간들을 위하여 자의로 그의 적들과의 싸움에 돌입하신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하나님의 새로운 계약의 사자로, 즉 우리를 위하여 악과 싸우시는 평화의 왕으로 세우심을 받으셨으나, 그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모든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명시되고 성령에 의하여 가시적인 표징으로써 기름 부음을 받으시기까지 그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에 의하여 기름 부음을 받으신 후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광야로 나가셨으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곳에서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로써 우리에게 말씀의 사역자들이 가장 지고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가장 극심한 고난과 위험을 받게 되는 소명을 받고 이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떠한 두려움과 신중함과 경외심을 지녀야만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약에 목사나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그들의 전심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양떼들을 양육하지 아니하고, 뱀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서도 경고를 발하지 아니하며, 교리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양식과 권면과 교리의 결핍으로 인하여 패망한 사람들의 영혼과 피를 바로 그들의 손에서 구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40일간 금식하신 것은 모세와 엘리야의 본을 따르신 것이었습니다. 이 중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이전에 40일간 금식하였으며, 또한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하자엘을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엘리사를 예언자로 세우라는 명령을 받기 전에 40일간 금식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율법이 이 세상에 옴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는 죄에 대한 지식과, 특히 우상 숭배와 같은 악들에 대한 정죄가 생겨났으며, 또한 이 율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계시되사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를 무지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깨끗케 하는 것은 오로지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사역이신 까닭에 비록, 율법은 이러한 일을 수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이 율법은 여전히 외적인 사악함의 열기를 차단시키며 인간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받고 그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저주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에게 이미 선포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있다면,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처럼 자신의 타락한 성품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권능자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 율법을 부여해 주심으로써 사탄과 그의 왕국을 약화시켰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사탄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하나님의 거역하고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죽이며, 하나님의 계율을 멸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또한 엘리야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를 섬기는 자는 자기 혼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한탄하고, 이사벨이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을 정도로 큰 힘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일이 있은 이후에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야에게 앞서 말한 하자엘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하자엘과 예후로 하여금 사악하고 음란한 우상 숭배자들을 살육하게 하셨으며, 또한 예후의 손을 피하여 나온 자들을 엘리사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께 대한 불경이 극에 달해 있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자 사탄은 앞의 일들을 기억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당시 사탄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 그들은 그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타락의 길을 걷도록 그릇된 말과 헛된 전통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흐리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시적인 교회의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있던 사탄은 그리스도 안에 그가 이제까지 인간에게서 보지 못했던 은총들이 깃들어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본받아 금식하고 계신 것을 보고 자신의 충실한 종들인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평정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그리스도를 이용할 방도를 찾기 위하여 모든 힘과 지략을 다 기울여서 그리스도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러한 사탄의 공격을 피하지 않으시고 사탄의 모든 유혹과 공격을 다 감당하셨으며 마침내는 오래 참으심으로 인하여 사탄의 힘을 약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이시자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그에게 싸움을 걸도록 하셨습니다.

"사탄이여! 그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하고, 그 어느 누구도 그대의 힘에 맞설 자가 없음을 보고 그대의 힘과 승리를 자랑하고 있다. 나는 나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혈과 육을 지니고 있으며 (그대의 독인 죄악을 제외한) 모든 인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다. 나를 유혹하고 나를 시험하며 나를 공격해 보라. 나는 그대에게 가장 유리한 장소인 이 광야를 선택하였다. 이곳에는 그대의 공격에 맞서서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대는 나를 공격할 충분한 시간을 지니고 있다. ! 그대가 해 볼 수 있는대로 해 보라. 나는 절대로 그대를 피하여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그대가 승리를 거둔다면 그대는 계속하여 이 사악한 세계를 그대의 왕국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그대는 나의 지체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죄를 위하여 정죄를 받도록 되어 있는 것 같이 나의 승리는 곧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계십니다. 사탄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공격을 가한다 할지라도 사탄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의 손에서 앗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기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록 사탄이 신실한 자들에 대한 공격을 결코 중지하지 않고 항상 그들의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기는 하지만 때때로 사탄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시기 시작하시고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최종의 승리를 거두려 할 때 한층 더 격렬하게 그들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사탄은 항상 아벨이 지니고 있는 겸손한 마음을 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아들이심으로써 아벨에게 호의를 보이실 때까지는 가인의 마음에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을 불어넣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는 야곱과 요셉과 다윗,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이와 동일한 사실을 분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소식을 듣고 얼마나 격분했었겠습니까! 사탄은 이제 막 태어난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하여 온 땅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에 대하여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어린아이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도 무서운 사탄의 계교입니까! 그 어린아이들이 사탄의 왕국을 위협할 정도로 완전한 아이들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이 이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살육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사탄은 동방의 세 박사들이 별을 보고 새로 태어나신 왕을 경배하기 위하여 온 사실을 알고, 또한 그때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오시리라고 예언된 때임을 알았던 까닭에 이처럼 헤롯을 시켜 그를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밤중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도시에서 태어나신 복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사탄은 이 약속된 씨의 출현이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까닭에 이 복된 소식을 듣고 진노와 악의로 가득찼으며, 또한 자기가 그리스도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사탄에게 반기를 들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단축시키려는 생각을 품고, 그리스도께서 입을 열어 하나님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이전에 다른 어린아이들과 함께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 그러나 이 잔혹한 사탄의 계교는 얼마나 헛된 것이었습니까! 사탄은 결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를 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질 때 밀알은 수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자비를 나타내시기 시작하실 때 사탄이 그들에게 얼마나 혹독한 공격을 가하는가를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따라서 여러분은 이러한 공격을 당할 때 결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탄이 박해를 통하여 육체적으로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거나 영적인 싸움을 통하여 내적으로 여러분에게 공격을 가할지라도, 여러분은 혹시 여러분이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하거나 사탄이 여러분을 사로잡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용기를 잃지 말도록 주의하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유혹과 고통들은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으며, 장차 때가 오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많은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것으로서, 바로 이러한 까닭에 사탄은 처음에 갑자기 여러분에게 공격을 가하면 여러분이 꼼짝없이 그의 공격에 손을 들리라고 생각하고 갑작스럽게 여러분에게 공격을 가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사탄과 이 모든 세상에서 하나님 자신이 여러분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고 계시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여러분을 강건하게 해 주시리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사탄이 자신의 왕국이 위협을 받았을 때 더 이상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이 계속하여 그리스도와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유혹의 날을 대비하라고 권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러한 권면을 하고 있는 나는 사악하고 비참하여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 말씀에 유의하여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유혹을 간단하게 언급함에 있어서 누가, 언제, 어디서 이러한 유혹을 받았는가를 설명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수단을 통하여 어떻게 유혹을 받으셨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때 받으셨던 모든 유혹들을 단지 영적이며 공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여기서 내가 지니고 있는 생각을 아무런 편견없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이 본문의 말씀을 고찰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 영과 육으로 이 유혹을 받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느끼셨던 배고픔과 그가 40일간 계셨던 광야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40주야 동안 맹수가 다니는 광야에 계셨으며, 40일간 아무 것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그의 영혼에 대고 속삭이는 사탄의 유혹하는 말을 들으셨으며 이에 대하여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사탄에 의하여 광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옮겨졌었으며, 그 후에 다시 높은 산 위로 옮겨졌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성경에서 이에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단지 인간 각자의 견해에 따른 개연성의 문제라면 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이러한 일들을 실제로 일어난 것으로 믿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갈 수는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에게 그 이상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영과 육으로 이처럼 쇠약한 가운데 계셨던 그리스도께 있어서 참으로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연약하고 쇠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은 이러한 유혹을 받을 때 흔히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되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람의 영과 육이 번뇌 가운데 빠졌을 때 이는 사탄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진노를 품으시고 그를 돌보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거니와 영과 육에 대한 시련이나 번뇌는 시험 당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징이 결코 아니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자신이 그들로 하여금 잠시 동안 이러한 시련과 번뇌를 당하게 하였던 까닭에 결코 그들을 그대로 버리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떠한 시련이나 번뇌가 곧 하나님의 진노의 표징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들을 죄인으로 정죄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다시 유혹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본문에 이은 4:2-3에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40일간 금식하시고 굶주리셨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탄에게 도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예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과 사자들에게 허락하신 권한을 침해하시지 않으시기 위하여 단 40일 동안만 금식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어거스틴이 강하게 주장한 바와 같이) 아무 것도 드시지 않은 채 1년이라도 아무런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시고 지내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에게 그를 공격할 수 있는 더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시기 위하여 인간과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극심한 배고픔을 느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사탄이 그리스도로 하여금 주린 배를 채우고 포식하도록 유혹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광야로 인도하신 목적에 일치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비난하는 일을 결코 중지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사악한 생각을 품게 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한 굶주린 배를 채우려는 것이 결코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유혹이 보다 영적이고, 보다 난해하며, 보다 위험한 유혹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로 선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에 대항하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서 이 말씀에 항거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들에게 악의를 품고 이들을 위협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은 하나님께서 죽음을 선포하신 곳에 오히려 생명을 선포하는데, 바로 이러한 까닭에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로 불리워졌던 것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절망 속에 빠뜨리기 위하여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들었던 말씀을 믿지 않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 사탄의 유혹의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너는 내가 기뻐하는 내 아들이니라'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소. 그러나 그대가 참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대는 미친 사람보다 더한 취급을 받을 것이며 우둔한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로 간주될 것이오.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신다는 표징이 어디에 있소? 그대는 오히려 모든 피조물들이 누리는 위안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그대는 야수들보다 더 못한 상태에 빠져 있소. 들의 짐승들은 매일 그들의 먹이를 사냥하며 땅은 그들을 위하여 풀과 초목을 내고 있소. 그래서 그들은 굶주림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지 않고 있소. 그러나 그대는 하늘로부터 위로를 기다리며 40주야를 금식하였으나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딱딱한 돌덩이 밖에 없지 않소? 만약에 그대가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이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해 보시오. 그러나 그대는 이러한 일을 할 수가 없음이 분명하오. 만약에 당신이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이러한 즐거움을 주시고자 하셨다면, 그대는 오래 전에 이미 그대의 배고픔을 해소하였을 것이며 또한 이처럼 어리석은 고통을 당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가 이처럼 오랫동안 금식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은총을 보이시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에게서 어떤 도움을 기다리는 것은 헛된 일에 불과할 뿐이오. 그러니 그대 스스로 다른 수단을 강구하여 그대의 생명을 보존하도록 하시오."

 

여기서 나는 많은 용어들을 사용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이로써도 사탄의 이 한 가지 유혹 속에 숨어 있는 사탄의 사악한 의도를 천 분의 일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그의 복종을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하나님의 약속을 부정하였습니다. 사탄의 이러한 유혹의 소리는 그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반론을 펼 수 없는 합리적이고도 명백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유혹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를 즐거워하는 온유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쓰라린 유혹입니까! 여기서 사탄이 내린 결론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사탄은 "그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도 아니고 그의 사랑하는 아들도 아니오"라고 결론지었으며, 그 이유로서 예수께서 고난 중에 있으며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이 유혹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빈곤,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을 만한 아무런 희망도 없는 가운데서 굶주리고 계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유혹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시고 계셨을 때 사탄이 대제사장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말한 것과 동일한 유혹인 것입니다.

 

이들은 아마도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고난으로부터 구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두려워하는 자를 결코 고통과 번민 속에 두시지 아니하신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람은 혹독한 고통 중에 괴로워하고 있다. 만약에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하나님을 참되이 경외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이 고통 중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이 고통 중에 그대로 죽게 내버려두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는 위선자로 거절하신 표징임에 틀림이 없다"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사탄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며, 또한 다른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이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그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들로 판단하고 정죄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에서 이와 같은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갖추어야 할 무기가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대답은 이 유혹의 의미에 대한 앞서 언급된 설명이 올바른 것임을 입증해 줍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사탄의 목적이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와 은총에 대한 소망을 버리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라면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시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탄의 간교한 생각을 알아차리시고 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대답해 주심으로써 사탄으로 하여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대답을 다음과 같이 보충해 봄으로써 그리스도의 대답의 의미를 한층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사탄이여! 그대는 내가 지금 굶주려 있으며 먹을 것을 전혀 공급받지 못하고 잇다는 것을 기회로 삼아 나의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마음을 불어넣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나를 전혀 돌보고 계시지 않다고 확언하고 있으나 그대는 거짓되고 사악한 궤변가에 불과하며 그대의 논거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자비와 섭리를 육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인간의 생사는 육체적인 물질의 풍요로움에 달린 것이 아닌 것이다. 인간에게 축복과 행복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이러한 물질의 결핍이 인간의 궁극적인 비참함은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생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러한 사람을 조롱하고 그에게 공격을 가한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 전에는 결코 그 육신이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성의 힘으로 알 수 없으며 일반적인 상식과 상반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의 생명을 보존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광야에서 40년간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고래의 배속에서 살려 주시고 용광로 속에 던져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구해 주셨다. 일반적인 인간들은 이런 경우에 그 안에서 죽음과 파멸 밖에 볼 수가 없으며 또한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버리신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들의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구해 내셨으며 바로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과 자비와 선하심을 한층 더 분명하게 나타내셨다. 따라서 나는 물질적인 것에 따라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를 판별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에 따라서만 그의 은총과 진리를 판별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며 결코 변하시지 않으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도 역시 영원하고 불변하다는 것을 믿으며, 내가 외적으로 어떠한 고통과 시련을 당할지라도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대답에서 우리가 어떠한 무기로 사탄을 대적하여야만 하며, 그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에게 제시하는 교묘하고도 악의에 찬 논거를 어떻게 격퇴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고 계셨던 까닭에 말씀 한 마디만으로도 사탄을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적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신명기 8장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사탄에게 응수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죽기 얼마 전에 한 말씀으로서, 모세는 바로 이 말씀에 앞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당하였던 많은 고난들과 또한 하나님께서 크신 섭리로써 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 주시고 그의 약속에 따라 그들을 약속된 땅이 보이는 곳까지 인도해 오셨음을 언급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대는 그대의 생명을 보존할 만한 것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대를 돌보지 않고 계시다는 증거요"라고 말한 사탄의 논거에 대한 매우 적절한 답변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유혹과 시련에 빠져 있을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 주신 예들을 제시함으로써 사탄의 흉계를 물리칠 것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약속을 믿는 자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적인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러한 사탄의 공격을 충분히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주된 계략은 하나님께 복종하고자 하고 사탄을 적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공격을 가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논거들을 창출해 냅니다. 때때로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아직 눈 먼 상태에 있었을 때 저질렀던 죄악들을 기억하게 하며, 또한 매우 빈번히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당하는 질병과 가난과 가정 내의 곤란이나 외적인 박해 등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노하고 계신 증거로 내세우며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유익함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영적인 십자가를 계기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 하며, 무한한 계략과 수단들을 통하여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기를 사용하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사탄은 결코 우리를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의 무기를 들고 사탄에 대항하여 싸워야만 하며, 또한 이 싸움이 가장 격렬한 상태에 이르러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이에 대항해 나가기가 힘들 때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분의 도움을 요청하여야만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기도와 눈물로써 그리스도께 호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비록 때때로 우리가 이 무기를 올바로 사용할 수 없다 할지라도 결코 이 무기를 놓아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탄에 대항하여 싸울 때에 우리에게 사탄을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결국 우리를 사탄의 손에서 구하여 주십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언젠가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왜 이처럼 유혹을 받으셨는가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여러 가지 잔 업무들이 내가 이 문제에 대하여 더 자세히 기록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여가가 있을 때 이 기록을 완결 짓고 이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이제껏 내가 기록한 것이 여러분에게 이를 읽는 수고를 끼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여러분에 대한 나의 선의와 사랑을 나타내 주는 표징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여러분이 이를 호의로 받으들이시리라는 점을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유혹의 날에, 인간의 심중을 헤아리고 계신 심판자로 하여금 여러분들이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모든 위로하심이 그의 능력 안에서 영원토록 여러분을 강건케 하시기를 바라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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