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12:27-29)

백 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당신 없이도 잘할 수 있으며,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해 온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 너희가 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아라!" 그리고 그분은 인생에 간여하시는 것을 멈추셨습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그분의 진노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타락한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

 

 

David Martyn Lloyd-Jones

 

27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 버리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까닭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섬깁시다.

29     "우리 하나님은 태워 없애시는 불이십니다 

 

 

저는 오늘밤, 우리가 봉독한 히브리서 12장의 세 구절에 주목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본문을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 27,28, 그리고 29절입니다.

 

"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하여,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를 섬깁시다.  우리 하나님은 태워 없애는 불이십니다. "

 

우리는 이 특별한 교회에서 함께 자주 만나는 것처럼 오늘밤에도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예외적인 어려움과 위기의 때에 봉착했습니다. 이 모든 위기를 생각하고 간파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우리는 이례적인 문제들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만 할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더 심한 상태로까지 나아갈 수 있으며, 우리는 사람들이 늘 영구적이고 지속될 것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붕괴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역사의 극적인 변화의 한 부분을 관통해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세계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이전의 시대와 유사한 시대로 일관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과 앞으로의 미래는 녹아 내리는 단지와 같고, 그 누구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 시대에서 우리가 바로 그러한 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중대하고도, 무시무시한 날의 연속입니다. 큰 위기의 나날들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나날들은 크게 시험해보는 기간이 됩니다. 오늘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물론이고, 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시련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시험받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누구나 서로 다른 삶의 관점, 즉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것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와 같은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난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입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냥 모든 일들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지, ." 이것이 삶에 대한 그들의 관점입니다. 누구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업 철학의 관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날들은 우리 모두를 시험하는 곳에 끊임없이 놓아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늘 시험받는 자리에 놓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들은 순수한가?" 아니면 "거짓으로 일관되어 온 것인가?"에 대한 시험이기도 합니다.

 

, 저에게 있어 이런 시험은 이와 같이 매우 분명한 방식으로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밤 이 나라와 세계의 정황이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널리 성행하고 있는 철학과 삶에 대한 관점 때문입니다. 즉 지난 백 년을 지나며 지금 세계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급속도로 낙원이 있는 방향으로 여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 그런 관점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오늘밤 세계의 정황에 대해 놀라야 마땅합니다. 전혀 엉뚱한 곳으로 여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관점이 즉각적으로 시험받게 된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가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낙원을 기대한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깜짝 놀랄 것입니까?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가?

 

두 번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밤 세계의 정황에 대해 실망하셨습니까? 왜냐하면 또 다시 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들이 과학자들과 다른 철학자들, 정치가들, 시인과 그 밖의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20세기는 황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 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기를 통 털어 최고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교육과 문화, 우리의 모든 과학적인 탐험들, 그 밖의 수많은 탐험 등으로 인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세계는 정말 낙원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런 것이 여러분의 관점이었다면, 물론 여러분은 현재의 이 위기와 모든 육감으로 감지한 미래에 대한 전망 때문에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세기를 주도하고 있는 사상가들이 모든 나라와 삶의 영역에서 임박한 미래에 대해, 혹은 우리의 전체 미래에 대해 극도로 근심하는 이 위기의 1975(여러분이 관심을 가진 어떤 연도이든지 간에)의 정황에 대해 실망하셨습니까?"

 

또 다른 질문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현대의 상태를 설명해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룩해 놓은 모든 빛 속에서, 우리가 자랑하는 모든 탐험들의 빛 속에서 왜 우리는 이런 위기의 날들을 통과해야만 하는 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해볼 수 있습니까? 왜 이 같은 위기들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금세기에서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것입니까? 왜 우리는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축적해 놓고 있는 것입니까? 왜 모든 미래의 전망은 그렇게도 어둡고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설명해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현대인이 즐거워하던 모든 진보 - 교육적 진보, 문화적 진보, 그 밖의 다양한 진보 - 가 있어왔음에도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상태가 되었는지 설명해볼 수 있습니까? 사람에 대한 여러분의 관점으로 삶에 대한 여러분의 관점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여러분의 관점으로 이러한 것을 한번 설명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설명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도 보다시피 현대의 정황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질문들을 계속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은 시련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소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평화와 즐거움과 불꽃과 같이 타오르는 기대가 있는 그런 전망을 보고 있습니까? 어떤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에게 보여지는 문제들은 이러합니다. 세계가 겪고 있는 지금의 위기들은 모든 지각 있는 사상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질문은 성경이 항상 인류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 중에서도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책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성경은 철학책이 아닙니다. 동화책도 아닙니다. 신화를 모아 놓은 책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인생과 삶에 대한 가장 실제적인 책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의 위대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사람은 항상 괴로움 가운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궁극적으로 어리석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태초부터 자신이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을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최초의 유혹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유혹하는 자가 아담과 하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시더냐?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말거라. 그는 네가 하등한 존재로 계속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는 네가 저 열매를 따먹게 되면, 너의 눈이 밝아져서 그가 행하는 만큼이나 많이 알게 될 줄을 안다. 너는 신이 될 수 있다. 너는 너만의 완벽한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 그들은 유혹자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초의 인간에서부터 모든 고통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파멸적인 관점을 지녀왔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견고하고, 보증된 확실한 인생의 체계를 세우고 설립할 수 있다는 그런 파멸적인 관점 말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이런 근본적인 오류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너무나 적절한 형태로 표현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사람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다"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항상 두 가지 중 하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좁은 길 아니면 넓은 길입니다! 좁은 길은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냐 맘몬이냐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두셨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 앞에 두 개의 길이 놓여졌습니다. 에발산으로 가는 길과 그리심산으로 가는 길, 두 개의 길이었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또는 오늘밤 우리가 읽은 본문에 있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우리에게 진동치 아니하는 것과 진동할 것들 사이에서 선택권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는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또 다른 표현으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 왕국의 시민들이 될 수도 있고, 반면에 우리는 없어지게 될 이 세상의 왕국에 속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앙 부흥론자들이 표현한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선택이며, 오늘밤 이보다 더 긴급한 문제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제도들이 붕괴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가 붕괴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밤 이 집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이 세상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긴급한 문제는, 우리가 유럽 경제 공동체(NATO)에 가입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 상태로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없어지지 않는 나라에 속하느냐 아니면 진동할 수 있고 없어지게 될 나라들에 속하느냐에 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 물론 이런 식으로 표현한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 히브리 기독교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특수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그가 기술하고 있는 이들 히브리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며, 그들의 옛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독교인들의 복음을 설교해 왔고 복음을 믿어 왔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옛 종교를 떠나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인의 삶을 즐거워하였고, 모든 것이 순탄하게 진행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극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들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소유의 신성한 책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가련한 사람들이 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옛 신앙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무엇이었던가? 옛 종교를 버리고 이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지지해온 것이 아니었던가?"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다시 유대교 신전과 유대교의 예전과 의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히브리서 기자는 놀라움을 표현하고 그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펜을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들은 단지 일시적인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것들은 진동할 수 있고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진동치 아니하고 없어지지 않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가르침 - 정확히 같은 요점 -을 오늘밤 우리의 현대 상황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표현해보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악한 때, 분열의 때, 그리고 우리가 처해 있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여러분이 안고 있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질 수 잇도록 기도합니다. 이것을 살펴봅시다! 진동되어질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살펴봅시다.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살펴봅시다!

우리가 이 문제를 명확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앞으로 진동하게 될 것을 붙잡게 되고, 사라져버려 무()에 이르게 될 것을 붙잡게 될 것입니다. 진동될 수 있는 것들, 즉 인간이 본능적으로 항상 진동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것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 그것들은 여러 가지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제가 주목하기를 바라는 형태는 "제국"입니다. 사람은 거대한 제국 건설자가 되려는 방법들을 강구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들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고, 세속적인 문학과 역사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만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고, 위대한 정부와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그러한 생각을 하고 살아 왔던 것입니다. 정부와 나라라를 조직하고 군대와 기타 다양한 수단들로 통제하려는 생각, 즉 이상향을 꿈꾸고 완벽한 나라를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매우 넓게는 거대한 제국 건설의 역사인 것입니다. 인류에게 그러한 축복을 가져다주고자 시도해 온 거대한 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

 

여러분은 성경에서 이러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습니다. 그 제국에는 느부갓네살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정복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매우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제국을 보면서, 이 제국은 절대로 요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것도 이 제국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곧 얼마 안 가서 이 사람은 들판에서 자신이 소같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4:33). 그의 손톱은 자라서 갈고리같이 되었고, 그의 머리는 길게 자랐습니다. 그의 몸 전체가 이 머리카락으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이슬이 그를 적셨고, 그는 소같이 풀을 뜯어먹게 되었습니다.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보잘 것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저는 바사 왕국이라 불리는 또 다른 거대한 제국을 기업 합니다. 다소 놀라운 제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제국 역시 같은 길을 갔고 모든 놀라운 제국과 왕국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강력하고도 위대한 알렉산더 밑에 있던 거대한 헬라 제국도 있습니다. 믿을 수 없고, 천재적이며 군사의 천재이기도 했던 그는, 약관 30세의 나이에 전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는 문명화된 세계를 통치했습니다. 그의 나라는 요동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견고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제가 여러 번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저는 마지막 세계대전 기간 동안 어떤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스위스 작가가 다니엘서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흥미 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세계가 위대한 알렉산더라고 부른 이 사람은 다니엘서에서 숫염소라고 불리운다"(8:1-12). 결국 그는 그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가고 우리는 지금, "그리스에 그 영광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파르테논과 폐허가 된 그 박의 다른 위대한 흔적들을 찾아 가 봅니다. 모두 그렇게 사라져 간 것입니다!

 

물론 위대한 로마제국이 있습니다. 그 제국! 법률사, 용맹스런 군사, 의회의 위원 등 각양각색의 가장 위대한 건설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로마에 대한 내용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지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 나라를 세웠는지 보십시오. 어떻게 정복했는지, 어떻게 해서 영국과 웨일즈까지 이르는 동맥과도 같은 길들을 닦아 놓았는지 보십시오. 놀라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제국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십니까? 야만인들인 고트인들, 반달족들이 물밀듯이 내려와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로마 시를 격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지금이라도 폐허가 된 로마를 가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라져버렸습니다!

 

, 저는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 최근으로까지 거슬러 올라 가 봅시다. 여러분은 아직도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의 남자를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거대한 제국 건설자였습니다.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그가 하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그는, "3의 독일은 천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지속되었던가요?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12년이었습니다. 베를린 시의 한 벙커에서 그렇게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고, 베를린 시는 폐허의 무더기로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우리는 솔직하게 사실들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알았었고, 또 알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제국은 바로 대영제국이었다고 말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영국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제국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두렵건대 해가 졌다고 말하겠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윈스턴 처칠 경은, "붕괴되거나 분할된 대영제국을 통치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위대한 제국은 그렇게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히 영연방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제국이란 없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이 확실하고, 영구적이며, 지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것도 이러한 것들을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제 없습니다! 한 가지 설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또 다른 것을 살펴봅시다. "문명"이라는 것을 보십시오. 인간의 교만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문명은 오늘날 위대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클락 경(Lord Clarke)의 유명한 강좌를 보고 듣습니다. 그들은 문명에 관한 이야기를 신기해합니다. 문명화된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집니다. 꾸며낸 설화나 민간전승 또는 전설로 말하는 기독교에 말이죠. 문명은 견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 문명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서둘러서 살펴봅시다. 문명은 어떻게 자신을 드러냈습니까?

 

가장 첫 번째로 철학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백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의 이름으로 기독교 신앙에 등을 돌렸습니다! 철학이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철학이 말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성경과 같은 꾸며낸 설화가 아니라 이성이다. 설교자의 웅변이 아니다. 예배 시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 따위가 아니다. 바로 이성인 것이다. 너는 생각과 두뇌를 가진 존재이다. 이성을 훈련시켜라. 이 일을 해야만 한다." 이성에 왕관을 씌우고 계시는 창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계시는 쓰레기와 같고 이성과 이해가 중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이성은 강력하며 요동치 않는 왕국 같았습니다.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들과 선조들이 기독교가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여 두려워 떨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말씀드린 것을 입증할 만한 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적인 세상과 대학의 가장 거대한 특징 중의 하나는 다름 아닌 이성에 대한 반감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체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체험을 어떠한 경로를 통해 습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마약 중독, 마약 복용 등 오늘날 회자되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무작정 취해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의 발생지는 어디였을까요?

 

마약 복용의 개척자이자, 마약 복용을 "여행"이라고 부르던 사람은 미국에서도 가장 좋은 학교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하버드 대학교의 어느 교수였습니다! 바로 티모시 레리(Timothy Leary)라는 사람으로, 이 교수는 LSD라고 불리는 사용법의 개척자입니다(이 사람의 주장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히피운동이 미국 전역을 휩쓸게 되었다 - 역자주). 그는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마약을 복용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왜였을까요? 그는, "우리가 신뢰하고 있는 이 이성은 잘못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험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불합리의 파도가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갔던 학생들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섬에서 생활하고자 대학에 등을 돌려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티모시 레리 이전에 이미 로렌스(D.H.Lawrence)라는 소설가가 그들에게 그러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이성은 온전히 왕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합리주의와 권력과 체험과 감각이 그 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방 신비주의로 돌아서고 있는지 아십니까? 어떤 이들은 곧바로 불교로 귀의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초월명상, 신비주의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고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미지의 세계와 접촉하라고 합니다. 신비주의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이성이라는 위대한 제국은 우리 눈 앞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밖에 무엇이 있을까요? 과학입니다! 또 다른 위대한 왕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를 내팽개쳤을까요? 바로 찰스 다윈이 성경을 격파했고, 기독교는 허튼 소리이며,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이 위대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진동할 수 없는 또 다른 위대한 왕국이었던 셈입니다. 그들은 뉴턴의 법칙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뉴턴이 고안해 낸 법칙들이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사실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영역을 살피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과학의 영역을 살피고 있습니다! 뉴턴은, "확실한 법칙들이 있다. 그것들은 절대적이다"라고 하는 것을 정립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뉴턴의 법칙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오늘날 뉴턴의 법칙들을 믿는 위대한 과학자를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이 그 모든 것들을 완전히 종식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위대한 단어는 법칙들이 아니라 상대성이라는 단어입니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화학을 조금이라도 배워보려고 했을 때, 우리는 달톤(Dalton)의 법칙이라 불리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원자는 나뉘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가 바로 원자입니다. 원자는 나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원자는 나눠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뉘어져 왔다고 하는 것이 위대한 문제거리가 되었습니다! 과학이라는 제국도 우리의 눈  앞에서 요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붕괴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 사람들이 감성적이라고 비난하는 기독교에 대항하고자 쌓아올린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바로 법과 질서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정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강단에서 이 문제를 자주 언급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우리의 비국교도 선조들이 실제로 로이드조지(Lloyd George:1925년 영국의 총리가 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 역자주)를 찬양하며, 의원의 활약을 통해 이 세상이 변화되고 영속적이고, 사랑스러운 사회가 도리 줄로 믿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진보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과거에는 군주 정치나 과두정치, 귀족정치 등 여러 정치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궁극적인 정치, 즉 정치과학의 완성인 민주주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법입니다!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정부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어떻게 법과 질서를 지킬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 걱정할 필요 없다.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법의 규정을 준수할 것으로 믿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법의 규정은 신성하여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이것을 신뢰해도 좋다. 사람들은 항상 법의 규정을 반영할 것이고, 복종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 우리가 지속적으로 읽고 있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 나는 의회의 활약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의회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즉 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이 잇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규정을 무시하고 제도 아래 있는 것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무역 연합의 지도자가, 자기 수하에 있는 일단의 사람들이, "우리는 이 규정에 동의할 수 없고, 이것을 싫어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우리는 이것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법의 준수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 법이 요구하는 것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지금 당면한 위기의 주요한 원인들 중에 하나가 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서두릅시다. 사람들이 쌓아올린 또 다른 것이 산업입니다. 이것도 견고하고 영속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감성주의 같은 것을 좋아한다면 모든 것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하겠지만, 당신이 정말로 거대한 제국을 세우고 싶다면, 즉 당신이 의지할 수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산업이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산업적인 사업을 세우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우리의 선조들은, 군사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에서 영국 제국이 확장됨에 따라 사업도 점점 거대하게 확장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런던 시에 이와 같은 거대한 협회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산업에 대한 믿음, 즉 그들이 그렇게 확신했고, 그들이 내걸었던 표어, "이 산업이라는 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것은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뭔가 절대적으로 믿을만하고, 절대로 요동하지 않을 것이라던 것이 산업이었습니다."산업은 영국의 은행만큼이나 안전하다." 여러분은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저에게는 이들 은행들이 지금은 아랍인들에게 산업을 지속시키고자 계속 돈을 빌리러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영국 은행만큼이나 안전하다." 영국화폐가 그렇다.... 계속 세울 수 있는 것이 여기 있다. ... 빅토리아 시대의 선조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이것이야말로 영구적인 것이다!" 저는과연 오늘밤에도 그때와 같이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계속 살펴볼 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믿음입니다. 인간이야말로 불멸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의 운명의 주인, 그의 운명의 지휘관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문명 시대의 사람을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인간은 감각 덩어리일 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학 잡지에서 읽은 것이 있습니다. 읽은 내용은 이러합니다. "인간은 결국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정신적인 기능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실제로 영혼도 없고, 그저 비인격적인 힘의 소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이런 것들의 결과물이고, 그것 말고는 반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죠! 인간이 수백 년이 넘도록 하나님 대신 섬겨온 것들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이런 가공할 것들의 놀이감이었던 셈입니다.

 

어떤 이는, ", 그래요? 하지만 정말 영구적이고 영원히 지속될 만한 것이 있지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자연 - 우주입니다. 우주는 고정된 것이죠. 산들과 영원한 언덕과 강들, 그리고 냇가와 바다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절대로 요동치 않을 것들이죠. 이것이야말로 지속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랍니다."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항상 그렇지 않다고 말해 왔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들이 뜨거운 열에 녹아 없어질 날이 오고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모든 것이 정화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베드로후서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그러나 이 말씀은 조롱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즉 이성이나 과학이나 이해에 근거한 것이 아닌 환타지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 환타지라고 비웃음 당하는 말씀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세상의 종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주도해 가는 과학자들과 사상가들 중의 일부가 세상의 종말을 예고해 왔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만큼 심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두 사람을 인용한다고 해서 실례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리스 스트롱(Mr. Morris Strong)이라는 이름의 신사 분이 있는데, 그는 세계 연맹 환경 프로그램(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의 행정 지도자입니다. 1974 6 5, 그는, "모든 면에서 인간 생존을 위한 방안을 찾아볼 수 없는 대 파멸의 목소리를 쫓아낼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설교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느 설교자의 말이 아닙니다. 세계 연맹 환경 프로그램의 행정 지도자의 말입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우리 앞에 있는 실제적인 증거에 대한 평가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대 파멸의 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현 상황을 이어나간다면, 이것은 가능한 일이며, 심지어는 타당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몇몇 분들은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TV시리즈를 보시고 계실 것입니다. 모리스 스트롱 씨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들이 사람들에게 실현 가능한 세상의 종말에 대해 경고해오고 있습니다. 대 파멸의 날!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바브라 왈드(Barbara Ward), 또는 잭슨 여사(Lady Jackson)라고 불리는 사람의 말입니다! 그녀는, "우리는 역사의 경첩에 서 있다."라고 썼습니다. , 이 말은 일부 감성적인 사람의 말도 아니고, 평화주의자의 말도 아닙니다. 위대한 사상가의 말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경첩에 서 있다. 즉 과거에 인류가 직면했었던 그 어떤 것보다 보다 임박하게, 보다 범세계적으로, 더욱 더 불가피하고, 보다 당혹스러우리 만치 위기를 향해 활짝 열려진 미래의 문 앞에 서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출생한 아기가 살아온 만큼이나 짧은 시간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바브라 왈드도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향해서 기대하지도 않은 어떤 것이나 드라마틱한 그 무엇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물론 오염의 문제, 생태학의 문제, 늘어만 가는 인구폭발의 문제, 그리고 세계적 기근의 실제적인 위험의 문제로 인한 종말을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절대로 요동하지 않으며, 진동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제국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눈 앞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도가 붕괴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교와 지식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실제로, 문자 그대로 우리의 코 앞에서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요동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이지 않습니까? 왜 세상이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이 모든 것들이 진동될 수 있고, 또 우리 코앞에서 진동해 온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 그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들어보십시오. 본문 27절입니다.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된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만든 것들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 모든 것들이 붕괴되고 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피조물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유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유한한 존재, 즉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현실을 직시하라.

 

인간은 자신이 우주를 다 감싸 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파멸적이고 그릇된 생각입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솔직하게 우리에게 말해오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법칙들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런 법칙이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실재하는 영역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펴 본 작은 영역과 확실한 법칙이 존재할 것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확률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모두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어떤 것입니까?  다 알지도 못하면서 우주를 확장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유한합니다! 그가 만든 모든 것이 유한한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계시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그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으며, 우주를 감싸 쥘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련한 인간들! 그는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작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 중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이 이 모든 것들은 영속적이지도 않고, 진동되어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유한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또한 죄인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죄인이기 때문에, 그가 만드는 모든 것이 타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인 그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더욱 더 완벽을 향한 포부를 가질수록 더욱 더 그의 타락을 보여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6:10).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까? 땅에서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손대는 모든 것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타락한 것입니다. 인간이 손대는 모든 것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타락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말했습니다(17:9). 모든 것들보다 거짓되고 지독하게 악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그 곳에는 이런 속임이 있고, 이 속임은 그가 하는 모든 곳에서 드러납니다. 탐심과 이기심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모든 인생과 모든 인간의 제도들의 특징입니다. 저는 오늘 오후 집회 때 이것을 지나가면서 언급했었습니다. 다시 한번 오늘 오후 집회 때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치적인 영역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거기에서 탐욕과 이기심, 질투, 시기, 또 다른 사람들을 중상하기 위해 준비된 모습들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누가 누구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인간이 다루는 모든 것들이 타락한 것입니다. 그 속에는 악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문명의 전체 역사는 순화하는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사람, 계속 건설되는 제국, 정상에 오르다가도 밑으로 추락합니다! 문명도 똑같습니다! 중국, 이집트, 그 밖의 과거의 다른 다양한 제국들의 위대한 문명들을 읽어보십시오. 그들이 일구어 낸 위대한 지식들도 읽어보십시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 중 미세한 부분만이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보는 주변의 모든 것이 그렇게 변화하고 부패하고 있습니다. 만들어 낸 것들이 부패하는 것은 그것들을 만들어 낸 인간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제국들 - 군대이든지 문명이든지, 철학이나 과학, 그 밖의 무엇이든지 - 이 붕괴되고 있는 궁극적인 원인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붕괴되는 가장 궁극적인 원인은 이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그 모든 것 위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런 능력을 사칭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분쇄기는 서서히 잘게 부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장 작은 것까지 으깨어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인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그분은 거대한 제국들이 생겨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 제국들은 모든 세상을 다 감싸 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제국들을 날려 버리셨고, 허물어 버리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말미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헤롯이라 불리는 유대인의 왕은 기독교인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야고보라는 사람을 체포하여 죽였습니다. 그런 후에 베드로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는 탈출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우리는 헤롯의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 그에게로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헤롯과 화목하기를 원하여 아첨하고, 복종을 보이며, 그를 찬양했습니다. 그는 그런 그들에게 웅장한 연설을 합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유효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12:21-22). 그가 대체 얼마나 큰 인물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야기의 결말은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치신 것입니다. 그는 충이 먹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널리 퍼지게 되었고 고루 전파되었습니다. 23절과 24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늘에까지 득의양양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악을 반대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그러한 면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는, "나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나는 복음을 아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6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왜 그는 이렇게 복음 전하기를 갈망했을까요.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그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8)

 

오늘밤 우리의 세상이 왜 이 모양입니까! 나의 친구 여러분, 바로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육과 문화를 접한 사람이면서도, 전쟁은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2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것입니까? 어찌하여 사람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입니까? 왜 무기를 축적해두고 있습니까? 왜 무기를 제작하고 있습니까? 문제가 무엇입니까? 저는 오직 유일한 대답만이 있을 뿐이며, 그 대답은 바로 이것이라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백 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당신 없이도 잘할 수 있으며,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해 온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의회의 활동과 정치적인 분야들과 그 밖의 다른 수단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래? 너희가 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아라!" 그리고 그분은 인생에 간여하시는 것을 멈추셨습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그분의 진노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타락한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등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로 그런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과 우주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느끼지 못하십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가 속한 이 덜 떨어진 세대에 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모든 사려 깊은 사상가들이 실제로 항상 이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도 이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저는 셰익스피어가 얼마나 기독교적인가를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것을 그의 작품인 대소동(The Tempest)과 맥베드(Macbeth)에 고상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환상의 근거 없는 모양과 같고, 구름으로 덮인 탑처럼, 화려한 궁전들처럼, 장엄한 사원들처럼, 위대한 금구와도 같았던 우리의 파티는 이제 끝났다. ... 그렇다. 상속받은 모든 것이 저 비현실적인 빛바랜 꽃수레처럼 녹아 없어질 것이며, 저 침상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꿈과 같은 재료로 지음 받은 것이다. 우리의 짧은 삶은 그렇게 잠을 자면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시끄러운 광음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아니었던가!"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잠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친구 여러분, 우리는 진동될 수 있는 것들, 즉 우리가 이루어 놓았던 것들과 우리가 영원한 삶을 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종교, 즉 감성주의라고 조롱하는 이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견고하고, 실속 있고, 흔들릴 수 없으며, 진동치 않을 것을 가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우리 눈앞에서 진동하고 있고, 흔들리고 있으며, 붕괴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항상 말씀하던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돌이켜 진동치 않을 것들을 보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서둘러서, 없어질 수 없는 나라들을 살펴와야겠습니다. 그것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두려운 관점이 세상에 있습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다른 이들이 묘사한 관점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 속에 내가 믿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내가 붙잡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들어보십시오! 진동치 못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 첫 번째로, 이 히브리서 기자가 27절에서 묘사한 것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사용하시던 킹 제임스 성경에는 '그리고 이 말씀'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성경에는 이 말씀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역자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씀! 이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그 음성!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의 위대한 주제인 것입니다.

 

이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1-2).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는 문자적으로 유일한 하나의 소망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음을 아십니까? 무엇이라고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자는 12:25에서,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것입니다! 왜 진동할 수 없는 것입니까?

 

우리의 주님께서 친히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35에서 그분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사도 베드로의 설교에서 이 말씀은 되풀이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서신에서,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벧전1:23). 또 들어보십시오. 24절입니다.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육체가 풀과 같지 않습니까? - 그 모든 영광이 -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도시, 허영, 의식, 특권계급, 그 밖의 다른 것들이 -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절 입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그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없어지지도 않고, 진동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렇게 진술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전해진 지난 세기들을 보십시오. 1500-2000년 동안 모든 방법들이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소망이요, 모든 것이 오고 사라질 때에도 이 말씀은 계속 전해져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왜 영구한 것일까요? 그 답변은 이 말씀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나다! 내가 바로 그 위대한 여호와이다! 그가 바로 나다! 나는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다! 바로 나 하나님이다!"

 

여름에 피는 꽃 같이 연약한 우리가 번성한다 해도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사라지기 마련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피었다가 사라져도

변치 않는 하나님은 언제나 계시리.

 

우리는 나무의 잎사귀들처럼 번성하네

그리고 시들고 소멸하나 변치 않는 나무가 또한 있으니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창조주이시며 전 우주를 유지하고 계시는 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은 변치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변동하시는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 또한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그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네가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길을 선택하지만 않으면, 너의 삶은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되고자 시도해 온 완벽한 삶을 영위하게 도리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은 십계명에서 이러한 계명을 반복하셨습니다. 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산상수훈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완벽하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태초부터 있었던 이 말씀들은 오늘날에도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아직도 유일하게 축복 받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시당하는 율법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현대 세계에서 이것들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새겨진 형상에 절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돈이나 은행을 사랑하거나 대영제국이나 내 나라나 우리 나라 언어를 떠받들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나의 제도, 나의 학식, 나의 교육받은 것, 나의 지식, 나의 성공을 경배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새겨진 형상인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만 경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이 계명을 준수하기만 했더라도,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에 실리는 그런 비극적인 일들과 끔찍한 문제들이 없게 될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둑질의 문제 - 좀도둑이든지 무장한 강도이든지 간에 - 보다더 더 끔찍한 문제는 우리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업상의 부정직함도 그렇고, 어떤 장소에서든지 여러분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 부정직함이란!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계명을 지키기만 한다면, 오늘밤에도 남녀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게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엄마 아빠 때문에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어린아이들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다툼, 별거, 이혼 - 세상의 고뇌거리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은 계명들을 열거해 드리겠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노나 나귀도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율법이며, 만이 이 계명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요약하신 셈입니다. "죄인의 삶은 고달프다." 과거에 술고래가 되는 것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과거에 마약중독이 되는 것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나이 어린 친구는, "아니오! 그게 아닙니다! 저는 단지 청소년기와 작별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술을 마실 거예요.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것은 성인이 되었다는 표시란 말이에요!"라고 말합니다.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 그들은 의지가 약해져서 그 모양이 된 거랍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소망 없는 술고래였던 것입니다! 마약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 삼아 한번 해보는 것이 그렇게 현명한 행동입니까? 담배 한번 피워보자 - 한번만 체험해 보자 - 이 한번의 행위로 우울한 것을 극복하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련한 타락한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이렇게 된 것은 사람들이 "죄인의 길은 고달프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국제연맹(UN)을 통해 그렇게까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또 전쟁은 발발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유한 나라와 제국에 있다 할지라도, 너희가 아무리 학식과 지식을 쌓는다 할지라도, 너희는 결코 평화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적의를 가지고 나를 거스리는 동안 말이다!" 절대적인 진술입니다. 결코 진동치 않을 진술입니다!

 

미래에 대해 살펴봅시다. 오늘밤 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까? 제가 답변한 대로입니다. 저는 성경만이 이 물에 답을 준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은 인간의 불순종과 죄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당신도 잘 알아둘 게 있소. 당신네 기독교도 실패한 종교였다는 것을 입증해 왔단 말이오."라고 말합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제가 묻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네 기독교를 좀 보시오. 지금까지 설교해 왔지 않소. 거의 2000년 동안 설교해오지 않았느냔 말이오. 그러나 당신이 묘사해 온 세상의 상태를 한번 보시오. 당신네 기독교는 전쟁을 없애지도 못했소. 당신네 기독교는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도 못했소. 나는 이런 기독교에 흥미 없어요."

 

여러분은 이와 같은 말에 답변할 말을 가지고 계십니까? 기독교는 한번도 이 세상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한번도 전쟁을 없애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쟁과 난리 소문이 마지막 때까지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말씀에 귀 기울이십시오. 예수께서는 홍수 전 노아의 시대에 -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즉 결혼하고, 사고, 팔고, 심고, 거두고, 수확하고, 건물을 짓든지 간에 - 이것이 홍수 전에 사람들이 했던 일입니다. 놀랍도록 좋은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 그들에게 경고한 노아를 무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하고, 먹고, 취하고, 춤추는 그런 일들을 홍수가 일어나 그들을 쓸어 없애버릴 때까지 계속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인자의 날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날도 정확히 그러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도 정확히 동일한 행동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현대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성경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하여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결혼하고, 먹고 마시며, 춤추고, 환락에 빠지고, 성관계를 하고, 사고 팔고, 심고 거두고 수확하는 일들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늘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세계가 마지막 심판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술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것을 9:27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은 이 말씀을 좋아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나의 친구 여러분, 여러분은 동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영혼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 영혼은 불멸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우리 자신을 치장하는데 탐닉하라고 지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반응하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내가 행한 행동의 기록을 그분에게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태초부터 말씀해 오신 것입니다. 또 이것은 복되신 그분의 아들에 의해 반복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중 누구라도 적의를 가지고 그분을 거스린 상태로 죽는다면, 그리고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는 지옥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이란 무엇입니까? 영원한 비참함과 불행의 장소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 관계자들이나 정치가들이나 철학자들, 설교자들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으셨음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한 가지 목적을 두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은 실로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타락한 그 순간, 그는 비참해지고 불행해졌습니다. 그는 동산에 있는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인간은 심판의 결과들을 거두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네가 행한 일 때문에 나는 너를 타락하게 만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의를 둘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부수어 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에 대한 첫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나의 세상이다 - 나는 이 세상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속할 것이다. 이 세상에 내 소유의 나라를 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그 나라의 도래에 대해 말씀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의 이교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라, 내가 돌이켜 너로 나라가 되게 하고, 너를 통해 지상의 모든 나라가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동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구약성경에서 읽게 됩니다. 시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시편의 다윗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평안함! 하나님께서는, "평안한 나의 백성들이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차매 -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무엇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설교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때가 가까웠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4:17). 이것이 그분의 메시지였습니다. 여기 왕이 계십니다. 그분은 나라를 세우시려고 오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하여 그분은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길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전체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형태의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택하신 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없어질 수 없고, 멸망될 수도 없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자라고 있으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세대, 그리고 모든 세기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수가 다 차기까지 계속 이 나라에 들어오게 될 것이며, 그 나라는 완성될 것이며, 그리스도는 이 나라의 머리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께 이 나라를 다시 드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유일한 대안

 

여기 탈출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붕괴되고 있는 인간들의 나라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없어질 수 없는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결코 진동될 수 없는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결코 진동될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절대적인 나라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원한 여러분의 삶을 위해서라도 들으십시오. 이 나라는 계속 존재할 유일한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의 나라에 속해 있을 것이라면, 그 나라와 함께 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적의의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여기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선한 삶을 살아야지만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전쟁을 반대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요? 도덕적인 존재가 되고 오늘날 타락한 사회 구성원들을 비난하면 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오! 아닙니다! 오직 한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계속해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교로 복귀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신전으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상의 그 어떤 성직자에게 가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니오.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오직 유일한 한 분의 중보자만 계실 뿐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변동될 것을 나타내시려고" 그러는 것입니다(12:27). 단번에 드려진, 한번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바 된 것입니다. 이 분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소와 염소의 피, 암소의 재로는 양심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보혈만이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밤 예수의 보혈이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이 범하지 않은 죄가 없을 정도라면, 즉 여러분이 지은 죄가 많다고 할지라도 - 오늘밤 죽 살펴보았듯이 여러분은 하나님을 거스려 죄를 범해 왔으며,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회개하고 나사렛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그분이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그분이 흘리신 보혈이 여러분의 죄들을 점도 흠도 없이 깨끗하게 하셨으며, 또 여러분을 용서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원한 나라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즉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모든 면에서 나를 공격하고 있고, 나를 추락시키고자 힘쓰는 이 어렵고 무시무시한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계속 서 있을 수 있을까요?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을 견디어낼 수 있을까요?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두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6장에서 매우 극적이고 영광스러운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게으르지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믿음과 인내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13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그 다음 14절도 보십시오. "가라사대 내가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그렇게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맹세로 보증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가 큰 안위를 받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어둠이 그분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린다 할지라도

나 변치 않을 그분의 은혜에서 쉬리라

 

내 영혼의 주변의 모든 것이 길을 열어 줄 때에도

그분만이 나의 모든 소망과 나의 목적지 되시나니

 

, 그리스도시여, 내가 서 있는 그 견고한 반석 되시나니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고 있는 모래라네

 

당신의 맹세 - 당신의 언약 - 당신의 보혈이

압도하는 물결이 되어 나를 지탱하여 주소서.

 

내 영혼의 주변의 모든 것이 길을 열어 줄 때에도 그분만이 나의 소망되시고 나의 목적지가 되십니다. 그리스도, 그 견고한 반석 위에 내가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철회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 장에서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히브리서 13:6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고 핍박할지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나는 그분의 숨결로 인도함 받는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분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며, 저버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변치 않는 그분의 은혜 아래서 쉬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에 귀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다음 말씀에 대해서 확실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3:8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많은 약속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들을 어깁니다. 그들의 마음을 바꿉니다. 생각을 바꿉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의 편의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닙니다! 여기 유일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분은 첫 세기에도 그러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그 이전에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진실이 아니었다고 말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디모데후서 2:19을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기초는 이미 튼튼히 서 있고, 거기에는  "주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을 아신다"는 말씀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다 불의에서 떠나라" 는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터는 견고히 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3을 보십시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우리는 가장 위대하고 엄청난 약속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지 않으시며, 친히 자신으로 맹세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맡길 수 있는 약속들입니다. 그것들은 절대적으로 영원한 것이기도 합니다.

 

, 나의 친구 여러분, 진동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 잠시만요. 당신은 그렇게 간단하게 우리를 낚아 챌 수 없을 걸요? 당신은 단순히 현명한 방식으로 우리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단지 변호만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이 일들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나요? 당신은 제게 어떤 증거라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말합니다.

 

, 제가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역사에 기초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역사 속의 인물입니다. 하나님 소유의 백성들인 유대인의 이야기도 역사 속의 이야기입니다. 그 약속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 약속들은 오실 메시야의 선지자들에 의해 증거되었습니다. 그 약속들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웃기는 것으로 보였으며, 그들은 그것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현명해서 그 약속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노아와 롯의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약속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나사렛의 예수는 소설에 나오는 허구의 인물이 아닙니다. 나사렛의 예수는 역사 속의 인물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왜 금년을 1975년이라고 부릅니까? 바로 예수께서 오신 후부터 연도 표시를 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분의 죽음은 사실입니다. 그분의 부활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불변의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이러한 것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사람들은 사악한 힘으로 최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시키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구약 속의 큰 나라들이 얼마나 유대인들을 멸절시키려고 했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왕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헤롯왕은 그분이 아기였을 때부터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계속해서 설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율법학자들, 헤롯의 사람들 모두가 그분 주위에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때를 얻어서 그들은 그분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불법한 자라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나무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부러진 몸을 나무에서 내려서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는 파괴된 것이다. 진동하게 된 것이다. 그는 죽었다. 그는 무덤에 묻혔다. 모든 것이 끝났다." 과연 그랬을까요? 무덤에 장사되신 지 삼 일째 되던 날 아침, 그분은 죽음의 사슬을 산산이 조각내 버리셨습니다.

 

시험의 때입니다. 기독교회는 이 시험의 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잔인한 사람들은 교회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 태동기부터 근절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반대자들은 그 시작부터 난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도 교회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로마 카톨릭 시대 때 거의 무너질뻔 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틴 루터를 세우셨고, 그 때문에 교회는 계속 존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종종 무지로 인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분의 나라가 무너질 수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을 그분이 다스리기 때문이니,

죽음과 지옥으로 가는 열쇠도

우리의 예수의 손에 있도다.

 

마음을 들어라 목소리를 높여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인간의 교만과 지상의 영광이여

검과 왕관으로 그분의 진리를 저버리는구나

노력과 수고로 탑과 신전을 세우나

결국 먼지가 되리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나의 신전과 나의 탑이 되시니

하나님은 주이시라!

 

당신의 왕관은 결코 있다가 없어질

교만한 지상의 왕국과 같지 않으니

당신의 나라는 영원토록 있을 것이며 지경을 넓힐 것이라

모든 당신의 피조물들이 당신에게 복종하리라.

 

진동될 수 없는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없어질 수도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부탁드려야 할까요? 그것은 사활을 걸 정도로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밤 여러분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선지자들의 말처럼 종말도 올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히브리서 기자는 그 질문에 대해 답해 주었습니다. 히브리서 12:28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 여러분은 이 나라를 받은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여러분은 제가 말하고자 애쓰던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믿는다면, 하나님에게 믿었노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나라를 받은 것입니다. 없어질 수 없는 이 나라를 받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5도 보십시오.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한 자 - 이 사람은 모세입니다 -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나의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여러분이 소중한 존재이듯이 여러분의 영혼도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거역한다면 - 제가 오늘밤 드린 내용을 믿으십시오. - 여러분에게 적의의 결과가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비참한 가운데에서 여러분은, ", 내가 왜 그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던가?"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거역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호소

 

12:28의 나머지 말씀들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까! 모든 것이 영원한 비극이 되고 무가 되어질 이 녹아 없어질 세상에 그분은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겸손하신 분이셨고, 많은 것을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심지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죽음도 인내하셨습니다.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으실 수 없으십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 모든 일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용서함을 받고, 결코 진동할 수 없는 이 나라에 들어가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에게 감사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자" - 은혜를 가지셨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리시며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이 말의 의미는 여러분이 술 마시고, 춤추고, 마약을 복용하고, 세상 즐거움을 그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이러한 것들은 여러분을 파멸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신들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나라들은 이들에게 속했으며, 결국 사라져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영광도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여러분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 나라에서 살도록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그분의 백성들에게 나아오십시오. 그분의 시민들과 생명을 함께 누리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오시게 될 때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섬기십시오! 어떻게 그분을 섬겨야 할까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십시오. 29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춤이나 왈츠를 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분이 명하신 대로 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바로 경건함과 두려움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이것이 저의 증거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려드리는 말씀입니다.

 

내 모든 주변에서 변화와 부패함을 보게 되더라도,

, 변치 않는 주님, 제 곁에 남아주소서

그분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은 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영원토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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